논문 쓰기의 기술 - 정보생산자를 위한 글쓰기 매뉴얼
우에노 지즈코 지음, 한주희 옮김 / 동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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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란 누구도 제기한 적 없는 가설을 세워 증거를 수집해 논리를 구성하고 답을 제시해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이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 정보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창의적 정보 생산자가 될 것을 권한다. 정보는 노이즈(이질감, 거슬림, 의구심, 불편함)에서 생산된다. 들어야 할 말은 듣지 않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선택적 난청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정보는 시스템과 시스템의 경계에서 발생한다. 누구도 제기하지 않은 가설은 독창적인 가설이다. 이로부터 독창적 답이 나온다. 교양은 노력으로 채울 수 있으나 독창성은 직관력에 달렸다. 교양이 있고 독창성이 떨어지는 것보다 교양이 부족하고 독창성이 있는 것이 낫다. 오해의 여지가 없는 명쾌한 표현과 흔들림 없는 논리적 구성을 바탕으로 근거를 제시해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기술이 논문이라는 아웃풋에 요구되는 조건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배움이란 모방이란 단어에서 왔다고 말한다.(일본어로 배우다는 ‘마나부; まなぶ’라 읽고 모방하다로 읽는다.) 우에노 치즈코는 느낀 점을 솔직하게 쓰라고 요구하는 문장교육보다 생각한 바를 데이터에 근거해 논거를 제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듯 쓰라고 요구하는 문장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의식 없는 질문은 없다.

 

사회과학자는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인간은 언제 삶의 의미를 느끼는가?“ 같은 질문으로 바꾸어야 한다. 선행연구가 존재함에도 새로운 질문을 설정하는 것은 지금까지 도출된 결론에 수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질문은 핵심적인 질문으로 축소해야 한다. 질문을 설정한다는 것은 항상 자신만의 질문을 설정한다는 의미다.

 

우에노 치즈코는 논문을 비판적으로 읽을 것을 권한다. 비판적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닌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정답이 필요하지만 경우에 따라 텍스트를 오독하면서 독창성이 발휘되기도 한다. 선행연구가 축적되었을 때야말로 자신이 세워야 하는 연구질문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가설이란 편견이나 예단의 다른 이름이다. 완전한 백지상태에서 연구에 착수하는 연구자는 없기 때문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학문은 중립적,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신화를, 가설은 이미 주관적이라는 말, 가설은 내 가설이지 타인의 가설이 아니라는 말로 비판한다. 이론은 현실을 해석하기 위한 도구다. 어떤 이론이라도 사각지대가 존재하며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질적 정보는 관찰과 면접 등으로 얻은 언어화된 정보이고, 양적 정보는 통계나 설문조사 등으로 얻은 수량화된 정보다. 데이터 수집 이후가 중요하다. 데이터 분석이라는 중요한 작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담론은 단어 이상의 의미 단위다.(136 페이지) 푸코는 역사에 계보학이란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정향진화론이나 발전 사관 등 목적론적 인과율에 대해 변화 전후를 기술하는 계보학은 변화가 필연적이지도 않고 증명하기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가지며 전환기에 존재했을지도 모를 다른 가능성을 선택지로 제시한다.

 

가토 노리히로는 계보학을 역사의 사다리 타기를 거슬러 오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담론에서 나온 정보 유닛에 논리적 관계를 부여하는 것은 담론 간에 다시 시간이라는 변수를 도입해 이야기를 편성하는 것이다. 이를 스토리텔링이라고 하고 다른 말로 재문맥화라고도 한다. 정보의 재문맥화는 당사자도 인지하지 못하고 놓친 ’정보의 집합 사이에 있는 구조‘를 발견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시간축에 따라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설명 또는 해석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분량이 질을 규정함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목이 중요하다. ’방문 간호사를 둘러싼 과제와 전망’이란 제목은 최악이다. 이를 ‘방문 간호사는 왜 늘지 않는가?’로 바꾸면 바로 질문이 무엇인지 전해진다. 문제설정이 결정되면 반은 성공이다. 나머지 반은 논증이다. 차례는 몇 번이고 수정해도 좋다.(219 페이지)

 

우에노 치즈코는 차례를 보면 논문의 질을 알 수 있다기보다 저자의 머릿속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차례가 잘 정리되지 않았다는 말은 저자의 머릿속도 잘 정리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사회과학의 문장은 설득을 위한 문장이지 공감이나 감동을 위한 문장이 아니라며 느낀 것을 느낀 대로 적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것을 근거를 제시해 논리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도록 쓰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논문의 기본은 질문과 가설, 근거와 발견, 결론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문장으로 써야 한다. 대부분 논문에는 요약이 필요하다. 100에서 400자 정도로 정보를 모두 담아야 한다. 이 요약을 논증하는 것이 본문이다. 서두에서 독자를 끌어들이는 기술을 츠카미(つかみ)라 한다. 논리적 문장은 결론이 앞에 나온다.(두괄식으로써야 함)

 

아는 것을 전부 쓰려고 하지 말라. 선행연구를 검토하는 이유는 한 눈에 자신이 세운 연구 질문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일뿐이다. 자명하게 통용되는 정보를 생략하지 말라. 이미 아는 것도 잘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온다. 개념과 용어 대부분은 여러분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앞서서 사용한 것이다. 그러면 누구의 어떤 개념을 어떤 이유로 채택하는지를 명시해야 한다.(230 페이지)

 

본문과 인용을 구별해야 한다. 연구자가 아이디어를 다른 것으로부터 빌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빌린 아이디어를 이용해 새로운 발견에 이를 수 있으면 된다.(231 페이지) 연구자에게 최상의 보수는 자신이 설정한 질문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는 쾌감이지 표절이나 도용은 아니다. 표절이나 도용은 본말전도다. 알기 쉽게 써야 한다. 아무리 복잡한 개념이라도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할 수 있다.(236 페이지)

 

논문의 수신자를 의식하는 것은 논문을 쓰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논문을 비평하는 일은 자기 논문을 쓰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비평과 말꼬리 잡기는 다르다. 비평은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에 맞춰 그 의도가 더 잘 통하도록 조언하고 논지의 결함이나 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을 법한 비판을 예상해 저자가 방어할 수 있는 지혜를 주기 위한 것이다.(248, 249 페이지)

 

비평은 비판, 반론과도 다르다. 예를 들어 상대의 논지에 찬성할 수 없더라도 가능한 한 상대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저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예상 가능한 비판이나 결함을 제시하고 이를 보완할 논점을 넣어서 완성도 높은 논문으로 만들기 위해 돕는 것이 비평이다. 논문 내용에 비판이나 반론을 하고 싶으면 논문이 발표된 후에 적절한 매체에 서평이나 논문의 형태로 발표하면 된다.(249 페이지)

 

가장 중요한 것은 논지의 타당성과 설득력이다. 출처를 표기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처럼 이야기하면 표절이고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이 한 말처럼 표현하면 조작이다.(270 페이지) 학문과 논문 모두 결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논문 작성법을 충실하게 따른 논문의 경우에도 무시무시한 비평이 존재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다.(272 페이지) 우에노 치즈코는 문체가 하나로 굳어지면 사고를 제약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문체는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는 편이 좋다는 의미다.(303 페이지) 고등교육의 가치는 지식을 생산하는 데 있다. 메타 지식을 만드는 것이다. 지식이 이미 존재하면 새로운 지식을 스스로 창출해야 한다.(31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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