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의 철학 지도 - 나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밑그림
김선희 지음 / 지식너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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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담론 및 정치사를 철학적 관점으로 조명하는 김선희 교수의 책이다. 여덟 개의 질문에 답을 해나간 책이다. 왜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왜 우리는 청년을 이야기하는가? 왜 우리는 고통스러운가? 왜 우리는 웃음을 추구하는가? 왜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가? 우리에게 우정이란 무엇인가? 왜 인간은 자기 고백을 남기는가? 왜 우리는 공부하는가? 등이다.

 

모두 만만하지 않은 질문들이다. 내게는 왜 인간은 자기 고백을 남기는가? 왜 우리는 공부하는가? 등이 크게 관심을 끈다. 각 챕터에 주요 철학자들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다. 가령 왜 우리는 웃음을 추구하는가?에는 헤라클레이토스, 아리스토텔레스, 임마누엘 칸트, 프리드리히 니체, 앙리 베르그송,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움베르토 에코, 장자, 호이징하 등이 거론되어 있다.

 

유토피아를 다룬 장에서 저자는 유토피아의 유형을 셋으로 나누었다. 천년왕국, 아르카디아, 유토피아 등이다. 유토피아는 섬으로 묘사되는 특징이 있다. 외부와 단절되었다는 점에서 섬이지만 이는 닫힌 공간이기에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철학적 주제이자 철학적 제안으로서의 유토피아는 과연 과학, 정치, 도덕이 조화를 이룬 세계가 가능한가라는 고전적인 질문 위에서 시작된다고 전제하며 수많은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으려면 이 철학적 제안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 말한다.

 

왜 우리는 청년을 이야기하는가?에서 인상 깊은 부분은 자기를 향유하고 삶의 중심에 자신을 두는 것은 어쩌면 미성숙의 특권, 청춘의 상징과 같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자기 안에 머무는 것이 전부라면, 그래서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청춘이 아니라 어린아이에 가깝다는 말이다. 자기 안에 머물다가 밖으로 나온 사람은 루소 말대로 제2의 탄생을 이룬 사람이고 성공이 아닌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왜 우리는 고통스러운가?에서 우리는 그리스 비극이 극 형식을 의미할뿐 그 자체로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 비극은 거대한 운명, 개인이 뒤엎을 수 없는 커다란 운명과 불완전한 인간의 대결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대결 속에서 발생한 엄청난 고통을 이기고 승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다룬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스 비극에서 주인공들은 운명에 의해 망가지는 존재이지만 그 운명에 무작정 끌려가는 존재는 아니다. 저자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나는 아파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대단히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해석일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은 고통을 견디는 시간과 고통을 잊고 있는 시간, 고통을 보류하는 시간, 그리고 겪은 고통을 해석하는 시간의 묶음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passion이란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수난(受難)과 열정(熱情)을 함께 의미한다. 고통은 수난당하는 것이지만 그렇기에 모종의 결단을 촉구하는 듯 하다. 저자는 수전 손택의 ’타인으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손택은 카메라를 총에 비유했다. 총의 비유는 카메라가 살아있는 존재를 대상화하고 고통받는 타인을 사물화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카메라에 담긴 타인의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나와 상관없는 하나의 외적인 대상이 된다.

 

저자는 사진에 담긴 고통받는 타자들은 단순히 일회적인 연민의 대상으로 추상화되기 쉽다고 말한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내가 소비하는 일회적 상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람이 프레임에 포착되는 순간 이미 연출되고 조작되고 선별되고 구성된 이미지로 환원된다.(109 페이지) 타인의 고통을 관음하고자 하는 심리의 바탕에는 그 고통에 대한 나의 무관함,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해 내가 확보한 안전한 거리가 깔려 있다.(110 페이지)

 

스토아철학자 세네카는 연민이란 원인을 보지 않고 감정적으로 사건을 대하는 태도, 감정적으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원인을 보더라도 연민의 마음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연민받은 대상은 수치를 느낄 것이다. 저자는 어떤 고통에도 나의 책임이 일부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며 고통과 비극이 나의 조건이기도 하며 이를 이겨내고 극복하는 힘 역시 온전히 나에게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비극과 고통을 바라보는 출발점이어야 할 것이라 말한다.

 

왜 우리는 웃음을 추구하는가?에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웃음을 중요한 철학적 주제로 정의한 것을 알 수 있다. 희극 즉 코메디는 어원적으로 술의 신이자 방랑과 격정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위한 가장행렬(광란의 축제)을 의미하는 데서 온 말이다. 저자는 우리사회에 인신공격과 감정적 손상을 동반하지 않는 웃음이 얼마나 될까요라고 묻는다.

 

저자에 의하면 풍자는 적대자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고 그 대상에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다. 해학은 자기 약점에 대한 부정을 바탕으로 한다. 상대에 대하여 감정이입을 하거나 상대를 연민하면 웃을 수 없다. 웃음의 대상과 감정적으로 연결될 때 우리는 웃음을 거두게 된다. 저자는 불교적으로 느껴지는 말을 한다. 자신에게 닥친 비극마저 드라마의 관객 같은 자리에서 볼 수 있고 그냥 남의 일로 받아들이면 나의 비극은 희극으로 바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의 삶을 비극적이라 느낀다면 그것은 아마도 남의 삶에 대해서만큼 나에게 거리를 두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말을 할 수 있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모든 경계를 허물고 근원적 일자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예술로 보았다. 니체는 진정한 그리스 예술은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질서 잡힌 체계를 향한 통제의 힘들(대낮의 힘들)이 디오니소스적인 것들에 질서와 빛을 부여한 뒤 진정한 예술성 즉 비극성이 깨졌다고 보았다.(131 페이지)

 

고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후의 긍정, 고통을 통과한 이의 명랑성이 진정한 명랑성이라 할 수 있다. 놀이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루덴스란 개념이 있다. 호이징하가 한 말이다. 오로지 그 자체의 기쁨을 위해 하는 행위들이 놀이다. 놀이는 그 자체로 자유로워야 하며 일상적 삶과 구분되어야 한다.(137 페이지)

 

놀이는 반복 속에서 새로움을 만드는 생성의 힘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연의 생성 과정을 우연성이 지배하는 자유로운 전개과정으로 보며 그것을 놀이라 표현했다.(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황금용에 대해 낙타는 순종하고 사자는 반항하지만 어린아이는 그것을 가지고 논다고 본 니체에게 세계는 선과 악을 넘는 신성한 놀이다.

 

왜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가?에서는 집에 관한 이야기가 다루어졌다. 한국사회에서 집은 개인이 입은 가장 큰 옷이자 물질로 치환된 자아(自我)다.(157 페이지) 저자는 자기 곁에 영원히 머물기를 바라는 바다의 님프 칼립소를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오디세우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화의 세계에서 정주와 이동은 단순히 공간의 변화가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의 변화, 지적 능력까지 포함하는 영혼 전체의 성숙과 관련된다.(167 페이지)

 

변화 자체가 하나의 질서이지만 이 변화는 무한한 확장이거나 양적 증가가 아니라 매번 국면의 전환으로 나타난다. 도가적 사유에서 순환은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원형적 순환이 아니라 리듬의 전환으로 보아야 한다.(171 페이지) 우주는 기계적으로 작동하지 않기에 인간이 쉽게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변화와 운동에는 근본적으로 질서와 리듬이 있어서 인간은 이를 예측하고 해석해 나쁜 국면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그래서 주역은 나쁜 운명을 바꿔줄 신비한 점서가 아니라 부정적 국면을 견디기 위한 예측과 해석을 제공하는 책이다.(173 페이지) 파르메니데스는 변화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개념이라 생각했다. 그에 의하면 변화는 우리의 감각 때문에 생기는 가상(假象)에 불과하다. 이 부분에서 영지주의자들의 가현설(假現說)을 생각할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것이 계속 변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이름을 붙이거나 하나의 이론을 만들 수 없으며 그래서 진정한 사유는 감각에 포착되는 변화가 아니라 오직 이성에서 사유되는 고정 관념뿐이라 여겼다.(175 페이지) 저자는 사람들이 잡 노마드, 21세기 유목민 등의 말에서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182 페이지) 저자는 어떻게 하면 고착되지 않을 것인가.

 

어떻게 이동의 낭만성을 자각하고 부유를 벗어날 것인가 등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철학 공부를 하는 이우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우정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우정의 의미가 집중 다루어졌다. 우정은 한 순간에 영혼이 열리면서 시간성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랑과 달리 오랜 시간 동안의 관계로 이루어진 시간성의 산물이다.(190 페이지)

 

중요한 사실은 18세기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서 우정론이 유행한 배경이 마테오 리치와 관련 있다는 점이다. 공자는 친구를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을 진정한 우정이 아니라 생각했다. 공자는 곧은 사람, 성실한 사람, 들은 것이 많은 사람을 이로운 벗으로 보았다. 공자는 서로 성장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사귀지 말라고 말한다. 스피노자는 파문당한 후 렌즈를 연마했다. 아는 고급 기술이었다. 비루하고 구차한 삶을 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정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스피노자다. 그는 이성에 따르는 사람을 자유인, 정서나 속견에 이끌리는 사람을 노예인으로 정의했다. 저자는 자유인은 자족적인 존재라면 그런 이에게 공동체란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을까? 라고 묻는다. 스피노자는 자유인은 공동체를 초월하는 존재라 말했다. 자유인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파생된다.

 

물론 스피노자는 자유인은 공동체 내부에서 다른 사람들과 우정으로 연결되기에 힘쓴다고도 말했다. 스피노자는 능동적 인간 즉 강한 인격의 사람은 다른 사람을 증오하거나 멸시하거나 조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피노자에게 신은 세계에 내재하는 존재기에 자신과 관련된 우주 만물을 사랑하는 것이 신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왜 인간은 자기 고백을 남기는가?에서는 자화상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자화상은 화가들이 붓으로 쓴 자서전 같은 것이다. 그림은 현재의 사실적 기술이 아니라 화가가 세상과 대면하는 방식, 세상에 드러내고 싶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담고 있다.(227 페이지) 저자는 자신을 그리는 행위는 자신에 대해 쓰는 것과 차원이 같은 것이라 말한다. “나는 왜 나를 잊지 않고, 흘려 보내지 못하고 기록하는가?” 근대에 이르러 자신을 자각하게 되었다. 개인이라는 자각이 역사적으로 부상한 이후에 자화상이 나왔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근대적 개인은 성찰하고 계획하는 인간이고 시간적으로 미래를 향해 현재를 기획하는 존재다. 왜 우리는 공부하는가?에서 저자는 우리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지적 학습만이 아니라 자기를 변화시키는 모든 실천적 노력을 모두 공부라고 한다. 저자는 다양한 지적 전통을 하나로 규정하려는 시도만큼이나 경계해야 할 것이 과학을 유일한 기준으로 보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청출어람이란 말이 있다.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남을 의미하지만 실제 맥락은 조금 다르다. 청출어람은 학문의 효과를 말하는 말이다. ’순자‘ 권학편에 나오는 말이다. 순자는 자기를 바꾸는 힘을 학문으로 정의한다. 공자는 다양하게 배우되 마음의 의지나 지향은 단단하고 두텁게 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절실히 탐구하되 이를 일상의 현실적 차원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공자에게서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신분이 아니라 능력을 통해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능력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면서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도덕적 능력이다. 공자는 능동적이고 도덕적인 주체를 군자라 불렀다. 타고난 신분으로서의 군자가 아니라 자기 이익에만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내버리는 사람은 소인이라 불렀다.

 

리(理)는 사물의 구성 원리일뿐 아니라 그 자체가 도덕적 가치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리(理)를 부여받아서 이루어진 존재다. 저자는 성적에만 올인하고 성공을 위해 매진하는 숨막히는 사회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8개의 철학 지도‘는 철학은 근본적인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업임을 알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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