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들춰보는 자료 가운데 '사이코의 섬'이란 책이 있다. 독일 통일 이전인 1943년 동독에서 태어난 신경정신과 의사 한스 요하임 마즈의 책이다. 번역 출간된 지 27년이 지났으나 이렇게 아주 가끔이지만 늘 새롭게 들춰보는 것은 내게는 이례적인 일이다.

 

본문에 "베드로가 바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바울에 대해서보다 베드로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하고 있다."란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내가 걸어온 직업의 길은 나 자신의 치유 시도"라는 저자의 말을 통해 더욱 현실성 있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베드로와 바울일까? 그들은 갈등 당사자들이었다. 별것 아니지만 베드로와 바울이 헷갈렸었다.

 

가령 '바울이 베드로에 대해 말하고 있는~' 식의 문장이 머리를 수놓기도 했었다. 누가 누구에 대해 말했는지는 중요하다. 저자의 의도대로 따라야 하리라. 베드로는 베토벤으로, 바울은 바흐로 치환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바흐 사후 태어난 베토벤이 바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도 바흐가 자신이 살아 있을 때 태어나지도 않은 베토벤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베토벤은 바흐란 시내가 아니라 바다라는 말을 했다.(독일어 '바흐; Bach'는 시내라는 말이다.) 음악학자 폴 뒤부세가 바흐란 말은 동유럽 방언으로 떠돌이 음악가라는 말을 했으니 베토벤의 말은 은유에 근거한 개인적 헌사 이상이 될 수는 없으나 그 자체로 빛난다.

 

'사이코의 섬'의 저자는 예수를 건강한 사람 그 자체로 보며 그가 솔직했고 개방적이었고 진실했기에 중상(中傷)과 박해(迫害)를 받았다고 썼다. 저자는 세 체제의 공통점도 언급했다. 실재하는 사회주의는 공산주의 낙원을, 실재하는 시장경제는 더욱더 많고 새롭고 나은 상품을 통한 만족을, 실재하는 기독교는 요구에 상응하는 순종을 할 때 더 나은 저 세상 삶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왜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자본주의란 말 대신 부드럽고 온건하게 보이는 시장경제란 말을 썼는지 의문이다. 우리에게 마음의 고고학이 필요하다. 이제 '베토벤이 바흐에 대해'란 말을 생각하며 '베드로가 바울에 대해'라고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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