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걸, 여우 목도리를 버려라: 근대적 패션의 풍경 살림지식총서 150
김주리 지음 / 살림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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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그리고 경성(京城)을 화두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근대인의 자율성과 개성의 각인은 패션과 함께 한다고 말하는 김주리 교수의 ‘모던 걸, 여우 목도리를 버려라’를 읽는다. 1932년 5월 신동아에 실린 방인근의 ‘모뽀. 모걸’은 흥미롭다. 모던 보이 M은 시골 아내가 보기 싫어 결혼한 이후 한 번도 집에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내가 친정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R에게 부탁하여 젊은 여학생을 소개받는다. M은 진고개 어느 조용한 식당에서 여학생 H를 만나는데 그녀의 짧은 치마, 비단 양말, 핸드백, 칠피 구두, 전기로 지진 곱슬거리는 트레머리에 반하며 곧 결혼을 한다. 그런데 첫날밤에 H가 난데없이 쪽진 머리와 무명 옷 차림으로 M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한다.

 

사실 그녀는 M의 옛 아내였다. 남편이 여학생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로 와 4년간 공부한 뒤 R 내외의 도움을 받아 연극을 꾸민 것이다. 동일인이라 해도 신식여인과 구식여인 사이에는 도저히 같은 존재로 인식할 수 없는 확연한 구분의 논리가 존재한다. 근대 패션은 그러나 일제의 식민 지배 원리가 구사한 근대의 전략이다.

 

패션은 다수가 선호하는 일반적인 양식이지만 변화를 전제로 한다. 식민지 경성에서 유행은 삶의 풍속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1881년 서광범이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요코하마에서 처음으로 양복을 사 입은 후 양복은 빠른 속도로 지식층 남성의 복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코트, 넥타이, 셔츠 모양, 칼라, 바지통, 멜빵, 모자, 구두, 지팡이, 커프스를 포함한 총체적 외양의 변화를 의미한다.

 

양복과 넥타이는 일부의 패션이 아니라 대부분 월급쟁이들의 보편적 외양, 하나의 레벨이 되었다. 쉽게 정착된 양복과 달리 여성의 양장은 정착에 진통을 겪었다. 원래 모던이라는 말은 현재라는 의미의 보통명사이지만 1930년에 사용된 모던이란 말은 고유명사로서 1920년 이후에 등장한 특정한 역사적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은 미국식 스타일을 중심으로 등장한 일부 소비계급의 문화적 행동 양식을 의미한다.

 

모던 걸은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었으나 아직 아무런 새로운 것도 갖지 못하고 외모의 새로움만 추구하는 존재라는 인식과 함께 온갖 묵은 곳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창조의 도정에 있는 존재로도 이해된다. 식민지 경성의 모던 걸에 대한 비판은 사치성에 중점이 두어졌다.

 

1920년대 이래 잡지에서 빠지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가 대경성 암행기 류의 기사다. 박태원의 고현학은 무엇인가? 그것은 도로가 잘 정비된 근대 도시를 산책하듯 걸으며 풍속을 기록하는 것으로 백화점, 특히 진고개의 일본 백화점을 풍경으로 한다. 진고개는 일본의 대 백화점인 히로다, 미쓰코시, 미나카이, 조지아들이 들어서서 일본식의 친절함으로 무장하고 조선의 자본을 모조리 긁어모으는 휘황찬란한 별천지로 각인되었다.

 

물론 사람들은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매혹과 활기를 느꼈다. 저자는 ‘날개’를 통해 드러난 이상 시인의 새로운 날개란 유행의 첨단을 걷는, 퇴폐적이지만 동경에 가득찬 몸부림인지도 모른ㄷ다고 말한다. 이상이 발견한, 진고개를 헤엄치듯 입 벌리고 지나가는 모던 걸, 모던 보이를 흔히 혼부라당이라 한다.

 

진고개를 걷는 일은 이국(異國) 즉 식민 본국의 수도인 동경에 대한 동경(憧憬)으로부터 기원한다. 사람들은 진고개에서 깨끗한 근대의 이미지를 보고 깔끔하고 청신(淸新)한 마네킹의 자태에 매료되었다. 지식인들은 진정한 근대를 찾아서 기대를 품고 동경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이상 역시 다른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동경에서 진정한 근대의 면모를 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동경에서 발견한 것은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가 진고개에서 느낀 것은 환상이었다. 1930년대 대부분의 경성인들은 초가집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일본인과 서양인의 문화주택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외국 유학파인 부르주아들이 그들을 모방해 황금정 일대에 문화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가난한 현실과 대조적으로 사치스러운 개인, 이는 경성의 거리를 활보하던 식민지 패션인에 대한 단적인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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