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소형(陸紹珩)이란 인물은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란 책을 쓴 '명(明)나라 말(만명; 晩明)의 지식인이다. 이름의 첫 글자인 소(紹)는 소개하다 외에 끈의 의미도 있고 두 번째 글자인 형(珩)은 노리개, 패옥, 갓끈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문 기사는 제목에서는 珩을 연이라 표기했고 본문에서는 형이라 했다. 생소한 글자이기 때문이었으리라. 珩을 연이라 한 것은 아마도 衍과 혼동한 탓이었으리라. 취고당이란 당호도 인상적이다.

 

검소(劍掃)는 칼로 없앤다는 뜻이겠는데 삿된 욕망이나 망상을 없애겠다는 의도의 산물인 듯 하다. 형(珩) 즉 패옥(佩玉)에서 패는 옆에 찬다는 의미다. 패검(佩劍)은 칼을 차는 것을 의미한다. 육소형이 실제로 칼을 찼는지 모르겠지만 조선의 칼을 찬 유학자 남명(南冥) 조식(曹植; 1501-1572)이 생각난다. 조식은 이런 시를 썼다. "40년 동안 더럽혀져온 몸/ 천 섬 되는 맑은 물에 싹 씻어버린다/ 만약 티끌이 오장에서 생긴다면/ 지금 당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부쳐 보내리라" 어떻든 검소(劍掃)라는 말은 흥미롭다. 덕분에 남명 조식까지 떠올리게 되었다.

 

"남명의 무인적(武人的) 기질과 법가적(法家的) 요소는 그 단처를 교정하고 보완하여 건전한 균형을 잡아줄 수 있었던 귀한 자산이었다."(한형조 지음 '조선유학의 거장들' 150 페이지) 문숭(文崇)의 나라에서 무인적이었던 조식은 곽재우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이 의병을 이끌고 왜적(倭敵)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움으로써 더욱 빛났다. 20세의 나이로 조광조의 급진 개혁이 좌절된 답답한 시대를 살게 되었던 남명 조식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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