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모험 - 철학자들과 함께 떠나는
황산 지음 / 북바이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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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의 ‘글쓰기의 모험’은 파스칼, 니체, 블랑쇼, 바르트, 사르트르, 벤야민, 들뢰즈, 데리다 등 여덟 명의 철학 거장들에게서 건져올린 글쓰기의 의미를 다룬 책이다. 여덟 철학자는 현대 철학의 거장들이다. 이 철학자들의 면면에서 우리는 우리가 현대적 글쓰기를 배울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단 황산의 이 책은 글쓰기의 요령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고 현대적 글쓰기의 기본이 되는, 파스칼에게서 비롯된 논리적이고 명료하고 간결한 글을 먼저 염두에 둘 것을 주문하는 책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파스칼에게서 비롯된 근대적 글쓰기 방식을 익히되 그것을 넘어서는 글을 써야 한다. 저자도 언급한 바이지만 자신이 호명한 여덟 철학자는 대부분 프랑스 철학자(파스칼, 블랑쇼, 바르트, 사르트르, 들뢰즈, 데리다)이거나 프랑스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독일 철학자(니체, 벤야민)들이다.

 

니체는 완성품으로서만 그 실체를 드러내는 예술의 특성 때문에 천재 신화가 만들어진다고 보았다.(43 페이지) 니체는 천재성이나 위대한 작품은 수공업적 성실성의 결과라 보았다.(44 페이지) 니체는 자기의 체험이 반영된 진짜 자기 글을 쓸 것을 주문했다. 니체는 규정적인 질서나 체계에 묶이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과 고유한 차이를 지녀야 하고 두려움 없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 스타일을 실험하고 늘 새롭게 발견할 때 새로운 자신만의 방식의 글을 쓸 수 있다고 보았다.

 

니체가 말한 초인을 글쓰기로 말하자면 그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온갖 경계를 넘어서며 언제나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감행하는 자라 할 수 있다.(54 페이지)

 

블랑쇼는 글쓰기는 글 쓰는 이로부터 펜을 앗아가는 절망 속에서만 그 근원을 갖는다는 말을 했다. 물론 저자는 지독한 불행이나 고통을 경험한 사람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식으로 블랑쇼를 오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가혹한 시련이나 칠흑 같은 밤을 경험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각자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겸허하게 출발하면 될 것이라고 말한다.(77 페이지)

 

‘사랑의 단상’의 저자인 롤랑 바르트에게 글쓰기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사랑의 주체는 불안정하기에 사랑에 빠진 사람은 매우 순박한 텍스트를 쓴다.(92, 93 페이지)

 

사르트르는 작가란 세계의 실상을 드러내고 그 드러냄을 통하여 세계에 변화를 가져오도록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라고 보았다.(105 페이지) 사르트르에게 작가는 창조자 즉 신과 같은 존재다. 사르트르에게 창조적 과정은 주체가 되는 과정이다. 사르트르에게 글쓰기는 자기 구원의 경험이자 성스러운 행위였다. 일상 가운데 행해지는 구도 행위이자 종교적 의례 같은 것이었다.(108 페이지)

 

사르트르 글쓰기론의 또 다른 특징은 타자를 위한 글쓰기다. 사르트르에게 글쓰기란 작가의 자유와 독자의 자유가 만나는 것이다. 작품이란 작가와 독자의 공동 창조물이다. 따라서 글을 쓰는 작가가 독자에 대해 지녀야 할 태도는 신중함과 존중의 태도다.(116, 117 페이지)

 

벤야민은 아이들 세계의 규범들을 가슴에 새겨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은 벤야민의 예술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미메시스 개념과 연결된다. 인간 특유의 미메시스 능력으로서 유사성 관계가 조성되는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현상을 벤야민은 아우라라고 불렀다.(127, 128 페이지)

 

벤야민은 비평의 기능은 오늘날에는 무엇보다도 순수예술의 가면을 벗겨내고 예술의 중립적인 터전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했다.(131 페이지) 비평은 환기시키는 힘이자 살리는 힘이다.(132 페이지) 벤야민은 서평을 비평의 중요한 영역으로 생각했다. 저자는 서평가들이 관객들의 시야에 들어오는 책들만 다루게 되면 정작 다루어야 할 작품들이나 글들은 배제되어 버린다고 말한다.(133 페이지)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내게 작품에 대해 비판을 잘 하지 않는 것을 잘못된 것으로 여겼으나 다루어야 할 중요한 작품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의도적으로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비판은 해야 하는 과제는 언제든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벤야민은 비평은 텍스트 너머의 콘텍스트 전체를 비평하는 것이라 말했다.(134 페이지)

 

벤야민은 최고의 읽기를 필사(筆寫)로 보았다. 벤야민에 의하면 필사는 도보여행, 단순한 읽기는 비행기 여행이다. 벤야민은 좋은 비평은 비평적 주석과 인용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말했다. 인용 역시 아무런 창조성의 개념이 없는 편집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본문의 어떤 부분을 발췌하는 데에도 발췌자의 관점과 시선이 담겨 있으며 인용문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작업에도 인용자의 관점과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에 의하면 인용 본문의 선택 자체가 창조적인 작업이며 그 해석 자체가 비평이다.(138 페이지) 일상 가운데 소소한 것들을 모아 쉼 없는 작업을 거쳐 마침내 작품을 완성하는 일, 이것이 글쓰기다.(144 페이지)

 

질 들뢰즈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오직 하나의 꿈만 추구하는 글쓰기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들뢰즈는 글쓰기와 삶을 구분하지 않았다. 글을 쓰는 이는 자신의 삶에 주목해야 하고 삶의 경험 속에서 글을 길어올려야 한다.(151 페이지) 들뢰즈는 배치를 다르게 하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문학의 새로운 배치를 고안하고 실험하라고 요청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저자는 주어진 배치 안에서만 글을 쓴다. 작가는 새로운 배치를 고안하고 새로운 배치 관계로 들어가 다양한 것들과 공명하며 새로운 언어의 세계를 펼쳐내는 자이다.(152, 153 페이지) 창조에 대한 그릇된 이해도 들뢰즈편에서 논의되었다. 창조를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165 페이지) 들뢰즈는 타자의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 나 자신을 차이 나는 새로운 나로 만들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168 페이지)

 

데리다는 글을 쓰는 것이란 물러나는 것이라고 말하며 작가의 부재를 강조했다. 작가의 부재란 텍스트를 쓰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작가가 사라진다는 말이다.(180 페이지) 데리다가 강조하는 것은 작가 자신에게 귀착하는 글쓰기를 지양하라는 것이다.

 

데리다가 말하는 바는 글을 통해 어떤 의미나 사상을 전달하려 하기보다 그냥 흔적을 남기는 가벼운 마음으로 쓰고 독자가 작품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냥 문지기로 남기로 마음 먹으면 편하다는 것이다.(186 페이지) 데리다는 유령(幽靈)론의 발원지이다. 유령이란 사본(寫本)의 세계를 말한다.(저자는 데리다가 말하는 유령은 칸트의 숭고, 벤야민의 아우라, 라캉의 실재, 들뢰즈의 ‘정동; 情動; affect‘과 유사한 것이라 말한다..정동이란 말보다 ’감응; 感應’이 어떨지?)

 

데리다는 이 세계를 본질, 근원, 기원이 없고 차이만이 드러나는 사본의 세계로 보았다.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자기답게 쓰는 것, 자기답게 사는 것, 자기 자신이 되어 자기만의 글을 쓰는 것이다.(196 페이지) 삶과 글쓰기가 하나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다. 저자는 글쓰기란 사랑하는 일이라 말한다.(214 페이지)

 

‘글쓰기의 모험’은 글쓰기의 기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글쓰기의 의미, 본질 등을 제시한 책이다. 많지 않은 분량에 여덟 철학자의 사상을 잘 정리해 지침과 연결시킨 책이다.

 

자기 글을 쓰고 매일 쓰고 사람의 삶이 담긴 따뜻한 글을 쓰라는 말 등이다. 책 전편을 통틀어 내게 가장 시사적인 말을 만났다. 그것은 “나는 사람들이 내가 어떤 새로운 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재료의 구성이 새로운 것이다.”란 파스칼의 말이다.

 

이 말에 내가 덧붙이고 싶은 말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자신의 문제의식이나 관점에 따라 다른 사람의 글을 재배치하는 것이 새로운 것이다.’란 말이다. 인용 본문의 선택 자체가 창조적인 작업이며 그 해석 자체가 비평이라는 벤야민의 생각도 내게는 크게 반가운 지침이었다. 무엇보다 내게 가장 의미 있었던 중요한 말은 삶(을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살아가는 것)은 글쓰기와 같다는 말이다. 그 두 영역(삶과 글쓰기)이 잘 조응하도록 애쓰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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