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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0년 11월
평점 :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을 한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가 "우리 나라가 독립한 이래 가장 위대한 애국자는 침식을 가장 많이 막아낸 사람이다."란 말도 했다. 지질학자 데이비드 몽고메리(David Montgomery; 1961-)의 '흙'에서 접하게 된 말이다. ‘흙’은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이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흙‘이라 했지만 원제는 ’Dirt’다. Dirt는 먼지는 물론 흙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몽고메리는 “지질학자로서 나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앞서간 사회가 그 시대의 흙에 새겨놓은 기록을 살펴보면 좋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지형학자로서 나는 지질연대를 통해 지형이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자연 경관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연구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흙이란 무엇인가? 흙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반응하는 역동적 시스템(24 페이지)이고 우리 행성을 이루고 있는 암석, 그리고 암석에서 용해되어 나온 영양소와 햇빛에 기대어 사는 식물들과 동물들의 인터페이스“(28 페이지)다.
암석을 배우는 입장으로 흥미를 가질 만한 분류도 몽고메리에 의해 제시되었다. 화강암이 풍화하면 모래흙이 되고 현무암이 풍화되면 점토질 흙이 된다. 석회암은 녹아서 사라지면서 얇은 흙층과 동굴이 있는 암석지대를 남긴다.(31 페이지) 중요한 점은 지구의 기후대는 흙과 식물군락이 진화하는 템플릿이란 점이다.
이 부분에서 기후와 흙과 식물의 밀접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성경의 모세, 초기 미국의 인물들 등에 이르는 다양한 사람들을 사례로 거론한 몽고메리가 말하는 바는 흙의 침식 속도와 재생산 속도의 갭이다. 당연히 너무 빠른 침식 속도는 위험 요소다.
몽고메리는 점점 빨라지는 흙의 침식은 그 흙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거덜낸다고 말한다.(202 페이지) 몽고메리는 문화와 예술, 과학 같은 다른 모든 것의 밑바탕은 충분한 농업 생산물로 번영의 시기에는 이 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농업이 비틀거릴 때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문제는 흙이 천천히 사라지기에 농부들이 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바라보기 어렵다는 점이다.(211 페이지) 몽고메리의 이야기는 왕가리 마타이(Wangari Maathai; 1940-2011) 이야기로도 이어진다. 에티오피아 시골에서 환경을 살린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분이다. 평생 50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은 분이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최초의 아프리카 여성이다.
지질학자로서 지형이나 암석보다 흙, 그리고 흙의 침식과 재생의 관계에 천착한 몽고메리의 노고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1958년 미국 농무부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미국 농지의 거의 2/3가 흙의 유실 허용치를 넘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침식되고 있다.(241 페이지)
몽고메리는 흙의 침식이 고대 사회들을 무너뜨렸고 오늘날의 사회도 심각하게 뒤흔들 수 있다는 무시 못 할 증거 앞에서도 지구적인 흙의 위기와 식량 부족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경고는 허공으로 흩어진다고 말한다.
1980년대 초반 미국의 농업경제학자 레스터 브라운(Lester Brown; 1935-)은 현대 문명이 석유보다 흙을 먼저 다 써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246 페이지) 몽고메리는 토지 생산성은 자본과 노동, 과학의 투입에 따라 무한정 높아질 수 있다는 엥겔스의 오류를 지적한다.
물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흙을 착취하는 기술의 진보라는 생각을 드러냈다. 엥겔스의 생각은 마르크스를 만나기 전의 생각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만남을 들뢰즈와 가타리의 그것과 비교할 만하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만남은 번개와 피뢰침의 만남이라 말해진다. 들뢰즈는 가타리가 번개였다면 자신은 피뢰침이었다고 말했다.
여러 인용 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미국의 지질학자 토머스 체임벌린(Thomas Chrowder Chamberlin; 1843 - 1928)의 말이다. ”흙이 사라지면 우리 또한 사라진다. 암석을 그대로 먹고 사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모를까.“
지질학이란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이나 대상을 다루는 학문이다. 몇 센티미터의 흙을 만드는 데 걸리는 ”천 년“(332 페이지)은 수십만년, 수백만년에 비하면 짧지만 우리의 삶에는 아주 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책 전편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흙이 보충되기보다 빨리 흙을 잃는 농법은 사회를 무너뜨린다.”(339 페이지)는 말이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말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한 문명을 끝장내는 데 이바지하지만 한 문명을 뒷받침하려면 반드시 기름진 흙을 제대로 유지해야 한다.“(346 페이지)는 말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저자가 지질학자이기에 암석에 대해 말할 법 하지만 흙을 이야기한 것은 지질 또는 지리적 관점을 넘어 우리 문명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한 결과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