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호로고루 입구 건너편 산 언덕에 경순왕릉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와 그의 둘째 아들 김순웅(金順雄)의 영단(靈壇)과 영단비(靈壇碑)가 조성되어 있다.(마의태자 묘는 북한 강원도 금강군에 있다.)

 

영단과 영단비 앞에 터를 제공한 남강(南江) 김창묵(金昌默) 님의 청덕공적비(淸德功績碑)가 조성되어 있다. 1922년생이니 올해 99세다. 영단과 영단비의 설립 내력을 밝힌 표석에는 마의태자가 강원도 내설악 한계산성(寒溪山城) 김부리(金富里) 갑둔리(甲屯里) 지역에서 항려운동(抗麗運動)을 했으나 통한스럽게 실패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부라고 하니 경순왕을 떠올리겠지만 경순왕은 김부(金傅)이고 마의태자는 김일(金鎰)이다. 인제에 있는 김부리는 김부리(金富里). 넘칠 일()에 들어 있는 익()은 부유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래서 마의태자의 연고지가 부유할 부자를 쓴 김부리(金富里)가 된 것이다.


마의태자와 김순웅의 영단 및 영단비는 경순왕릉에서 1. 5km 정도 떨어져 있다. 김창묵선생은 독립운동가 김덕원(金德元; 1876~1946) 선생의 손자다.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物傑里)에 척야산(拓野山) 문화수목원을 만드신 분이다. 터 기증자인 김창묵 선생과 일동의 입장에서 마련한 헌성비(獻誠碑)에는 '영단(靈壇) 헌수(獻竪) 사업에 헌성(獻誠)해주신'이라는 표현이 있다. ()는 세울 수다.(가로로 놓다는 의미의 '; '과 반대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갔으나 인제 지역에서 고려에 대항하는 운동을 펼쳤다는 것이 흥미롭고 아버지(경순왕)의 거문고를 가지고 갔다는 점, 그리고 그 거문고가 여러 사람을 거친 뒤 조선의 이경윤(李慶胤)에 이어 이경윤보다 40년 정도 어린 허목(許穆) 선생에게까지 전해졌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현재 거문고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허목 선생의 '미수기언(眉叟記言)' '무술주행기(戊戌舟行記)'"호로하 석벽 위에 옛 성이 있다. 이 하천을 따라 고구려와 신라가 접경하고 있었다."는 구절이 있다. 호로고루와 경순왕릉이 가까운 곳에 있고 호로고루 입구 건너편에 마의태자 영단까지 갖추어져 있는 장남 답사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로 인해 취소될 수도 있지만 취소 통보가 있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할 생각이다.(그나저나 척야산의 의미가 궁금해 수십 곳을 찾은 끝에 겨우 한 블로그에서 척야산은 拓野山이라 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감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