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번째 괘인 수택절(水澤節)괘까지 읽었다. 물이 위에 있고 연못이 아래에 있는 괘 또는 연못에 물이 가득한 형국이다. 이 괘를 보며 박상륭 작가의 '죽음의 한 연구'에 나오는 마른 늪을 떠올렸다. 마른 늪보다 절제하는 연못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60번째 괘라니 잘 건너온 듯 하다. 이제 풍택중부, 뇌산소과, 수화기제, 화수미제가 남았다. 수화기제와 그 뒤에 나오는 화수미제가 말해주듯 하나의 책을 읽고(건너고) 나면 새롭게 건너야(읽어야) 할 책이 나타나게 된다.

 

이미 건넜음을 뜻하는 기제(旣濟) 다음에 아직 건너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미제(未濟)가 오는 것은 태평[] 다음에 막힘[]이 오는 것, 기다림[] 다음에 송사[]가 오는 것과 패턴이 같다. 어떻든 책 선택은 내가 하지만 때[]와 자리[]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읽고 어떤 책을 읽을지 아직 떠오르는 바가 없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주역에 개안(開眼)하게 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고 주역도 충분히 독공(獨工)이 가능함을 알게 해준 책이다.

 

수택절은 가장 쉬운 효사들로 구성된 괘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절제에 대해 말하는 '수택절'의 택은 한 없이 받아들이는 연못이 아니라 수용 가능한 만큼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아낌 없이 흘려보내는 연못이다. 이 괘의 주지(主旨)와 다르게 나는 수택을 수택(手澤) '손의 자취' 또는 '손때'라 읽는다.(은 연못이기도 하고 자취이기도 하다.) 중천건에서 수택절까지 왔으니 물때가 끼듯 책에, 그리고 시간에 자취, 흔적, 고투 등이 그려졌음이 분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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