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독일로 가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하기 시작해 후에 박사가 된 국문학과 출신의 시인 허수경 님이 타계한 지 2년이 되었다. 내일(6월 9일)은 시인의 생일이다. 그에 맞춰 유고 산문집 ‘오늘의 착각’이 나왔다. 시인의 시집 ‘혼자 가는 먼집’을 풍천소축(風天小畜)과 산뢰이(山雷頤) 괘로 분석한 서평을 쓴 적이 있는 나는 이화원(頤和園) 이야기를 생각하며 연결점을 느낀다.
이화원은 청나라의 마지막 통치자였던 서태후가 지은 여름 별장이다. 땅을 파내 거대한 호수를 만들고 거기서 나온 흙으로는 산을 쌓았다. 분명 산과 무덤은 다르지만 나는 가산(假山)이란 말로부터 무덤을 떠올린다.
왕릉을 발굴하는 불운 혹은 행운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말을 한 시인은 “마을이 있는 곳에는 무덤도 있다. 꽃이나 음식이나 술을 들고 무덤을 방문하는 일은 죽은 자와 인연이 있던 산 자들이 아직 살아 있을 때 하는 일이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면 무덤을 방문하는 이는 도굴꾼 아니면 고고학자들”(‘모래 도시를 찾아서‘ 106 페이지)이란 말을 더했다. 좋은 시로 큰 울림을 전해준 시인을 오래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정신의 고고학자라도 되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