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단단함 - 세상.영화.책
오길영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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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를 실험하는 글쓰기, 감성적 체험의 글이 아닌 엄정한 성찰에 바탕을 둔 진실의 정신이 작동하는 글은 어떤 장르의 글일까? 바로 에세이다. 에세이에 필요한 것은 현란한 글재주가 아닌 지성적 사유의 표현이다. 저자 오길영 교수는 신영복 선생을 거론하며 에세이를 예술적 글쓰기의 독자적 형식이라 표현한다.(92 페이지)

 

그는 이런 정리된 글로 에세이 모음집인 아름다운 단단함을 시작한다. 책 제목인 아름다운 단단함은 김수영 시인이 사랑의 변주곡에서 운을 뗀 아름다운 단단함이란 표현에서 비롯되었다. 세상, 영화, 책 등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문학평론가이지만 좁은 의미의 문학보다 더 중요한 일이 세상에는 많다고 생각(57 페이지)하는 저자는 문학을 주어진 도덕에 물음을 던지고 더 나은 삶을 사유하고 상상하는 장르로 본다.(19 페이지)

 

저자가 배격하는 것은 작품 물신주의(작품을 작가와 분리해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문학자족주의다. 저자는 삶과 분리되지 않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긍정한다. 저자는 말한다. 삶과 분리된 작품의 아름다움은 공허하다고.(19 페이지) 저자가 생각하는 훌륭한 문학은 극한적인 삶에서 발생하는 극한적 사유의 표현이다.

 

저자의 글에서 나는 물적 토대 또는 생산력의 중요성이 강조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이런 문장에서 그런 점이 드러난다. “한국사회의 물적 생산성이 과연 다수 시민들이 즉자적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낮은가? 그렇지 않다면 답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른 사회를 상상해야 할 것이다.”(33 페이지)

 

이는 먹고사니즘에 매몰된 우리 대학의 현주소를 논하는 자리에서 발해진 말이다. 다른 사회란 말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문학사의 평가에서 남는 것은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는 작품뿐이라는 자신의 말이 구태의연하다면 그런 비평가로 남겠다는(27 페이지) 비평가, 불화나 고독감에 더 친화감을 느끼는(38 페이지) 비평가다.

 

저자는 대상의 핵심을 파악한 정확한 시를 좋은 시라 말하는 비평가, 시에서도 관건은 감각적 지성이라 말하는 비평가다. 같은 맥락에서 문학에 필요한 것은 감성, 감상, 감각만이 아닌 더 많은 냉철함, 자기 객관화, 지성(58 페이지)이라는 말이 읽힌다. 저자가 세상을 보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고통이다. 주체(the Subject)는 체제의 신하(the subject)이기에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말에서 그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인간은 주체가 되는 과정에서 하나를 얻는 대신 하나를 잃는 존재다. 저자가 의거하는 원칙은 유물론적 원칙이다. 이는 유아론(唯我論)과 대비된다. 유아론은 아몰랑의 현학적 버전이다. 저자에 의하면 유물론자는 자기변명을 하지 않는다. 저자에게서 느껴지는 바는 쿨함이다. 냉정이라고 표현해도 무리는 없겠다.

 

그런 점은 세상을 실상 그대로 본다는 의미의 여실지견이라는 말을 연상하게 할 만큼 불교적이다. 물론 저자의 그런 점이 의도의 결과인지는 모른다. 쿨함이라 했지만 저자는 에게 타자는 냉엄한 존재이고 그것이 의 마음에 들고 안 들고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세상의 냉엄한 이치라고 말한다.(103 페이지)

 

유아론은 라캉이 말하는 상상계의 논리를 따른다. 상상계의 아이에게 주체와 세계는 분리되지 않는다. 상상계의 아이에게 욕망이 유예되거나 성취되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저자는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란 라캉의 말을, 타자들은 나의 욕망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말로 풀이한다. (105 페이지)

 

그에 의하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의 욕망이 아닌 타자의 욕망이라는 시각에서 현실을 보는 것이다. 세 부분(세상, 영화, ) 가운데 나에게는 여전히 낯선 장르가 영화다. 그래서 저자의 영화론을 눈여겨 보았다. 저자는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 문학평론가로 자신을 소개한다.

 

저자는 사바하(娑婆訶)라는 영화 -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소서란 의미의 불교 영화 - 를 통해 높고 고귀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낮고 비천한 짐승들의 세계를 바라보며 그 짐승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것에 종교의 숭고함이 있다고 말한다. 이어 그런 숭고함이 사라져 가는 제도권 종교를 생각하게 된다고 결론짓는다.

 

곁에 두고 싶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란 제목의 글을 보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몇 편을 함께 논한 글이다. 데뷔작인 환상의 빛과 최근작(2016)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연이어 보았다고 말하며 저자는 그의 영화에서 지속되는 것과 달라진 것들을 비교하게 된다고 덧붙인다.(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영화를 분석하는 형식 또는 방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작품에 대한 가치 판단을 떠나 그냥 소장하고 싶은 책이나 영화가 있다고 말한다. 살벌해져 가는 세상에 마음이 우울하거나 낙담할 때 다시 보고 읽으면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책이나 영화라는 말이다. 책 가운데 흥미롭게 본 작품은 내가 18권이나 소장하고 있는 이정우 교수의 책 가운데 한 권인 영혼론 입문을 소개한 글이다.

 

저자가 본 영혼론 입문은 영혼이라는 화두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념을 해체한 책이다. “서구 근대 철학에 오면 영혼의 개념은 점차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정신 혹은 마음, 의식 등이 대체한다. 이제 영혼이라는 말은 거의 자취를 감춘다.”(249 페이지) 일정한 실체로서의 영혼/ 정신이 아니라 인식론적 능력/ 기능으로서의 마음, 의식이 문제가 된다.

 

그리스 철학에서는 감각과 지각이 구분되지 않았다. 감각과 지각 신체와 결부되어 있다. 책편에 실린 글들이 역시 묵직하다는 느낌을 준다. 사상과 정치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와 나치즘을 소개한 글이 대표적이다. 박찬국 교수는 하이데거의 정치적 견해와 행위는 악성의 것이었으며 그것들은 그의 철학에 근거한 것이라는 입장을 따르되 그것을 수정한다.

 

하이데거의 정치적 견해와 행위와 그의 철학 사이의 필연적 관계는 부인하되 양자 간에 우연 이상의 관계가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박찬국 교수는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가 비록 그것이 사후적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치명적 오류였지만 자신의 시대와 사유를 결합시키려는, 시대와의 진지한 대결의 결과였다고 보는 것이다.(274 페이지)

 

저자는 하이데거 철학의 의미를 서구 형이상학의 극복이라는 추상적인 담론의 차원에서만 이해하려는 하이데거주의자들이 새겨 들을 주장이라고 정리한다.(277 페이지) 진은영 교수의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를 소개한 글)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매개라는 말이 그 중 하나다. 매개 없이 우리는 경험할 수도, 사랑할 수도, 소통할 수도 없다는 칸트의 아이디어는 철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는 말이다.

 

대중들이 스스로 실천하는 자기 운동은 언제나 미리 구성된 질서, 보편적인 선험적 매개체에 굴복할 때에만 타당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들뢰즈가 칸트의 정언명법을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도 네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며 행위해야 한다는 사실 즉 자기입법의 사실이 의무로 정해져 있다는 것으로 해석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가장 중요하기에 가장 끝에 배치하게 된 진술은 맥락과 분리된 작품의 이름다움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작품 물신주의는 문제적이란 사실이다, 또한 맑스나 들뢰즈 같은 철저한 유물론자에게서 배운 사고의 관점은 원래부터의 아름다움, 작품만의 아름다움은 없다는 점이라는 말이다.

 

에세이에 현란한 글재주가 아닌 지성적 사유의 표현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대로 저자의 문제는 간결하고 지성적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설명하며 한 대상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한 시가 좋은 시”, “시에서도 관건은 지성, 다시 말해 감각적 지성이란 말이 인상적으로 읽힌다. 정확한 감정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좋은 시라 생각하는 저자의 시론(詩論)을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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