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상투적인 말을 반복하고 기계 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아이가 귀엽다고 말하면 어김 없이 결혼과 연결짓고, 결혼 말이 나오면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게 되니 하라고 말하고, 게시판의 숫자가 실제와 많이 달라서 지적하면 원래 그러는 것이라 말한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니 상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들은 내용적으로 소박하고 인식론적으로 거칠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실천도 실천 나름이 아니겠는가? 실천과 무관한 지식도 있지 않은가? 진공 상태에서 빛의 속도가 초속 30km라는 말을 안 사람이 할 실천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론과 실천을 나누지 말고 실천이 필요한 지식을 가능한 한 많이 자기것 화 하자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 때문에 멸망한 것이 아니라 나그네를 환대하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이라 말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그런 부류일 것이다. 최근 김형경 작가의 말에서 한 수 배웠다. 정신분석을 받기 전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많은 것들 중 하나가 자신이 책에서 세상을 배웠기 때문에 세상살이에서 자주 삑사리를 낸다고 여긴 것이라는 말, 현실에서 시행착오를 범할 때마다 자신이 책에서 세상을 배워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 것이라는 말(‘좋은 이별’ 228 페이지)이다.

 

이진경 교수의 책에서도 한 수 배웠다. 세상이 아무리 명료하고 뚜렷이 규정하더라도 존재자는 단지 하나의 규정된 대상이 아니라는 말(‘예술, 존재에 휘말리다’ 216 페이지)이다. “낯선 시간의 세계, 낯선 자전의 세계를 말하는 저자는 베테랑이란 어쩌면 영원히 실패를 반복할 줄 아는 자를 뜻하는 것 아닐까”(같은 책 248 페이지)란 말을 더한다.

 

나는 이 말로부터 전문가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라는 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말을 떠올린다. 하이젠베르크가 청소년기에 원자론이 수록되어 있는 플라톤의 저서 티마이오스를 원문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가 뮌헨대학교의 그리스어문학과 교수였기 때문이다. 그는 원자가 육면체이거나 피라미드형이라는 플라톤의 주장은 헛소리라 간파했지만 물질의 최소단위를 모르고서는 우주를 이해할 수 없다는 플라톤의 기본 사상에 매료되어 입자 탐구에 평생을 바쳤다.(리언 레더먼, 딕 테레시 지음 신의 입자‘ 308 페이지)

 

불합리한 생각들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고 영감을 얻은 하이젠베르크 역시 전문가다. 상투적으로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지만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사무엘 베케트의 말)는 말을 생각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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