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5월 13일) 재인폭포 해설지에서 국립문화재 연구소 직원들의 방문을 받았다. 연구차 대전에서 먼 이곳까지 찾아온 분들이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역사 파트에 대한 임팩트 있는 소스좀 주세요.'라는 말을 했다. 물론 내 말은 전달 방식도 분류도 잘못된 것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고고(考古) 연구, 미술문화재 연구, 건축문화재 연구, 보존과학 연구, 복원기술 연구, 자연문화재 연구, 안전방재 연구, 교류협력 등의 분류 체계를 취했다. 사실 이런 것을 검색하지 않는 이상 국외인으로서 상세히 알 수는 없으리라.
그러면 나는 어떤가? 해설하는 나는 관람객들께 어떤 이미지로 비춰질까? 현무암 vs 화강암, 지진, 화산 등으로 지구가 크고 드라마틱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식 vs 침식, 풍화 등 지구가 끊임없는 속삭임 같은 제스처로 자신을 알리는 방식, 심성암(深成巖) vs 화산암(火山巖) 등을 이원적 대립(binary opposition)으로 알리지만 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분류보다 폭포 자체일 것이다.
나는 아직, 그리고 여전히 서울이 익숙하지만 한양도성은 내가 거의 유일하게 불편해 하는 해설지이다. 이번 주말 나는 그 마(魔) 같은 장소인 낙타산 일대를 해설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날 화산(花山)에 자리한 융건릉(隆健陵)과 용주사를 해설해야 한다.
한양도성의 네 산을 높이(백악, 인왕산; 340미터 내외/ 목멱산; 260미터/ 낙타산; 125미터)를 기준으로 볼 수 있듯 화산(華山)도 높이로 볼 수 있다. 화산의 융릉(隆陵)과 건릉(健陵)은 가운데 동쪽 능선을 사이에 두고 있어 화산의 양 날개 품에 능이 하나씩 안겨 있는 형상이다.(차윤정 지음 ‘다시 걷고 싶은 우리 숲’ 33 페이지)
화산의 가장 높은 곳은 108미터에 이른다. 한양도성에서 풍수상 자손을 상징하는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타산은 다른 산들에 비해 높이가 낮아 우려와 그에 따른 대책을 불렀지만 그보다 낮은 화산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아늑하고 친숙한 산으로 이름이 높다.
시민들에게 낙타산의 지세가 갖는 풍수적 의미보다 실재적인 것은 산책하며 쉬기 좋은 산이라는 점이리라. 정조에 의하면 화(花)는 화(華)다. 화성(華城)은 화봉삼축(華封三祝) 고사에서 유래했다. 화(華)나라의 국경을 지키는(봉; 封) 사람이 요임금에게 수(壽), 부(富), 다남자(多男子) 등 세 가지 축원을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그런데 요임금은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 번거로운 일들이 많아지고, 아들이 많으면 근심거리가 많아진다는 이유로 모두 사양했다. 화성(華城)이란 이름에서 정조는 요임금처럼 덕을 펴는 도시를 의도했고 백성의 입장에서는 왕실의 장수, 부귀, 번창을 기원하는 도시를 의도했다. 문제는 화봉삼축은 좋은 내용이었지만 당사자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점이다. 이 경우 분류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흘 전 재인폭포에서 일행 몇이서 GEO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궁리하는 모습이 보여 설명했다. geo는 geology(지질학)에서 유래했다는 말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에게는 geography(지리학)도 있다는 점이다.
지질공원이라고 지질 이야기만 할 수는 없다. 능력을 논하기 이전에 그래서 안 된다. 지질공원이지만 지리 이야기도 하는 것이 순리이고 바람직하다. 지질학과 지리학이 같은 영역을 다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지리학은 인문지리학, 자연지리학 등으로 나뉘고 지질학은 자연과학 자체라 할 수 있기에 인문지질학, 자연지질학 등의 분류 자체가 없다.
내가 말하는 지리학은 인문지리학이다. 지리학을 공간과 장소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이현군 지음 ‘서울, 성 밖을 나서다’ 20 페이지) 어떤 의미에서 지리(地理)가 지질(地質)보다 더 중요하다. 옥석의 무늬, 틈 등을 의미하는 절리(節理)라는 말이 있지만 지리(地理)는 무엇일까? 땅의 무늬라 할 수 있다.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잉여존재(être de trop)라는 말을 지구의 혹(식물의 줄기, 뿌리 따위에 툭 불거져 나온 것)이란 말로 바꿔 불러도 좋다. 사람은 결국 지(구)에 얹혀 사는 무늬 즉 혹 같은 존재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