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겸재(謙齋)에 관심이 많다. 그것의 시작은 김정숙(미술사학 전공) 님의 그 마음을 그대는 가졌는가란 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 책에 나오는 균형이냐 대립이냐는 글에 의하면 정선(鄭敾)은 금강산을 음양으로 구성된 태극의 형상으로 표현했다. 왼쪽 흙산이 음()이고 오른쪽 바위산이 양()이다.

 

이어 한정희(미술사학 전공) 님의 한국과 중국의 회화를 통해 17, 18세기에 우리가 그렇게 문화 독립적인 자주의식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의문을 접했다. 저자는 겸재가 금강산을 찾고 그림을 그린 것은 우리 것을 찾고자 하는 자아의식이나 국가의식의 발로라기보다 세속에서 잠시 떠나 초속(超俗)의 진리를 찾아보고자 하는 심진(尋眞)의 경지이며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신선의 마음이 되어보려는 일종의 신선사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후 이상국(문화콘텐츠 전공)님의 옛 사람들의 걷기에서도 겸재를 만났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겸재를 찾다가 그가 주요 내용으로 다루어진 부분이 있어 책을 산 것이라 해야 한다. 이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겸재가 신라의 일월 고사(古事)에서 이름을 따온 세오(細烏)에게 한 말이다.

 

겸재는 조선에는 조선의 그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전하며 보고 또 보고 싫증이 날만큼 실컷 돌아다니며 자연현실을 들여다보라(포유어간; 飽遊飫看. ; 물릴 포, ; 놀 유, ; 물릴 어, ; 볼 간.)는 말을 했다. 이어 여러 명가를 섭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상당히 시사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오늘 산 전영우(산림생물학 전공) 님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겸재가 진경산수화풍을 확립한 때는 포항 청하 현감 재임시란 말이다. 저자는 옛 그림에 나타난 소나무는 유교적 윤리 규범의 상징이나 도교적 장생사상을 뜻하는 장수(長壽)의 상징물로 형상화한 것이 대부분이고 자연 그대로의 소나무를 화폭에 담는 일은 드물었다고 말한다.

 

한정희 님의 지적(겸재가 금강산을 찾고 그림을 그린 것은 초속(超俗)의 진리를 찾아보고자 하는 심진(尋眞)의 경지이자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신선의 마음이 되어보려는 일종의 신선사상에서 나온 것)과 공명한다. 이래저래 공부가 산만해졌다. 진경(眞境)이냐 아니냐를 논하기보다 겸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는지 헤아리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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