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기, 읽기, 담기
전영우 지음 / 현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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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들숨에 포함된 산소는 나무의 들숨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나무가 광합성으로 몸체를 불리는 것은 나의 날숨에 포함된 이산화탄소를 나뭇잎의 숨구멍을 통해서 들숨으로 흡수했기 때문”.. 산림생물학 박사 전영우의 이 말은 기억할 만하다. 이는 삼라만상이 그물망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그의 숲 보기, 읽기, 담기는 즐거움과 깨달음을 포함 오감을 통해 4철 숲에서 체험한 개인의 경험이 담긴 책이다. 목차도 춘, , , 동으로 이루어졌다.(각 파트가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된 것도 특이하다.) 우리 숲은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한국전쟁 후 혼란기를 거치며 황폐해진 숲을 푸르게 되돌린 것이다. 이는 세계사적으로 드문 일이다.

 

숲은 수풀의 줄임말이지만 나무와 풀은 물론 토양, 동식물, 바람, 미생물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숲은 천연림 vs 인공림, 단순림 vs 혼효림, 동령(同齡)vs 이령(異齡)림 등으로 나뉜다. 열대림, 난대림, 온대림, 한대림 등으로도 나뉜다. 대부분의 우리 숲은 온대림이다. 온대림 중 가장 흔한 것이 소나무 숲이기에 소나무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제목에 나오는 숲 보기와 읽기는 과학적 지식에 근거를 두지만 담기는 개인의 감성에 바탕을 둔다. 사람이 감별할 수 있는 냄새의 종류는 40만 가지이지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너무 부족하다. 층층나무는 봄 숲에서 가장 늦게 잎을 피우는 나무다. 모든 나무, 풀이 한꺼번에 꽃을 피우고 싹을 틔운다면 봄 숲의 정경은 오히려 밋밋할지도 모른다.(31 페이지)

 

넓은 잎이 바늘잎보다 더 빠르고 더 쉽게 흙으로 돌아간다. 넓은 잎나무의 잎은 보통 휘발성 물질을 함유하지 않기 때문에 낙엽 속에 여러 종류의 미생물이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42 페이지) 책에는 슴슴하다(싱겁다), 아스스하다(차거나 싫은 것이 몸에 닿았을 때 약간 소름이 돋는 느낌이 있다) 등의 단어들이 나온다.

 

숲의 공기와 도시의 공기가 다른 점은 테르펜(향기로운 휘발성 기름)과 피톤치드의 존재 유무로 알 수 있다.(51, 52 페이지) 음이온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런 존재들로 혜택을 베푸는 숲은 숲과 내 자신이 둘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준다.(53 페이지) 염분 섭취가 필요한 야생 동물들은 염분을 많이 함유한 나무를 본능적으로 안다고 한다.

 

야생 동물은 짠맛을 내는 나무를 배우지 않아도 알아내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가 숲에서 짠맛을 느낄 수 있는 나무가 많지 않다. 염부목(鹽膚木), 목염(木鹽) 등의 이름을 가진 붉나무가 유일한지도 모르겠다.(90 페이지)

 

단풍은 하늘을 이고 있는 산정에서 불붙기 시작해 인간 세상에까지 내려온다. 꼭대기에서 아래로 단풍이 20 퍼센트 정도 들었을 때를 첫 단풍이라 하며, 80 퍼센트 이상 물들었을 때를 절정기라 한다. 첫 단풍 이후 보름쯤 지나야 절정의 모습을 나타낸다. 우리나라 단풍은 보통 하루에 50 미터씩 고도를 낮추고 25 킬로미터씩 남하한다고 알려졌다.(98 페이지)

 

단풍은 자연의 은밀한 작업이다. 색소체가 파괴되어 나타나는 것이 단풍이지만 색소체를 보유한 개개 나무의 생리적 조건 못지 않게 주변 환경도 중요하다. 평지보다 산, 강수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 양지쪽, 일교차가 클수록 화려하고 아름답다. 한 해 좋았다가 다음 해 좋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99 페이지)

 

같은 단풍나무라 해도 나무줄기 위치에 따라 잎의 색이 각기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99, 100 페이지) 한 나무에서도 잎이 자리잡은 위치, 시기 등에 따라 제각각의 단풍이 든다.(100 페이지) 저자는 모든 것이 다 변할 때 변하지 않는 것이 존재함으로써 그 차이가 더욱 부각되는 세상 이치를 말한다.(106, 107 페이지)

 

이는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야란 말을 풀어쓴 것 같다. 저자는 소나무는 늘 푸른 것만은 아니라 말한다. 소나무도 낙엽을 떨군다.(111 페이지) 아주 짧은 시간일망정 녹색 솔잎과 황갈색 솔잎은 부조화를 이룬다. 목조 건물에 쓰이는 단청의 두 바탕색은 석간주(石間硃)라는 붉은 색과 뇌록(磊綠)이라는 청록색이다.

 

두 바탕색이 소나무를 상징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건물 기둥에 칠하는 석간주는 보통 적송의 붉은 줄기 색과 같고 건물 지붕틀의 뇌록은 소나무 잎과 같은 청록색이다.(114 페이지) 단청을 상록하단(上綠下丹)으로 수식한다. 나무들은 봄철에 그해 가을도 아닌 다음해 피울 꽃눈을 준비하거나 불볕 더위가 한창인 여름에 다다음해 터뜨릴 솔방울을 준비한다.(134 페이지)

 

다른 많은 나무들과 달리 참나무는 단풍 든 잎을 낙엽으로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등 참나무 숲 가족은 열심히 생산한 도토리가 다람쥐와 어치의 겨울 식량으로 저장된 것에 유감이 없다.(135, 136 페이지) 다람쥐와 어치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 묻어둔 도토리를 다 찾지 못한다.

 

겨울 숲은 수묵(水墨)의 세계다. 겨울 숲의 진수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에서 찾을 수 있다. 우중월정(雨中月精) 설중오대(雪中五臺)란 말이 있다. 비오는 날은 월정사에서 바라본 풍경이 최고고 눈 오는 날은 오대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최고라는 말이다. ‘숲 보기, 읽기, 담기는 서정적인 책이다.

 

나무나 숲의 역사보다 시적인 감수성으로 개별 나무들에 대한 느낌과 향유의 언어를 전한 책이다. 그럼에도 정보(지식)로 취할 것들도 꽤 있다. 사람이 감별할 수 있는 냄새의 종류는 40만 가지라는 말, 넓은 잎이 바늘잎보다 더 빠르고 더 쉽게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 꼭대기에서 아래로 단풍이 20 퍼센트 정도 들었을 때를 첫 단풍이라 하며,

 

80 퍼센트 이상 물들었을 때를 절정기라 한다. 첫 단풍 이후 보름쯤 지나야 절정의 모습을 나타낸다는 말, 단풍 형성에는 색소체를 보유한 개개 나무의 생리적 조건 못지 않게 주변 환경도 중요하다는 말 등이다. 저자의 최신작인 우리 소나무등을 읽을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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