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쾌함, 리듬감, 체계 등 세 가지가 결여된 3()의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글쓰기도 숱한 노력이 담보되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기법에 속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성의가 없는 사람이 글을 그렇게 쓰리라 생각한다. 좋은 옷을 차려 입고 패션 감각을 발휘해 멋을 내려고 하듯 글쓰기에서도 멋이라도 내려는 마음이 있으면 그렇게 일방적으로 못 쓰지는 않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강하다.

 

그런 사람들은 글은 의미만 통하면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쓴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그럼 글을 잘 쓰는가? 돌아보게 된다. 나는 똑똑하지 못해 다른 사람들은 저절로 되는 듯 싶은 주술(主述) 및 시제(時制) 일치를 퍼즐 맞추듯 하려 애쓰고, 주의를 기울이고, 기법이 전부가 아니라 생각해 좋은 내용을 담으려고 열심히 읽은 인문, 자연과학, 문학, 철학 등의 내용을 반영하고 긴 문장과 짧은 문장을 적절히 교차시키려 하고 고치고 또 고치고 힘들게 쓴 글이 오해 거리를 남기면 안 되기에 불명료한 부분이 없도록 보고 또 본다.

 

다른 분야에서는 미적거리기 일쑤이지만 글은 그나마 생각나면 바로 바로 쓰는 편이다.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감성적인 언표까지 담아내려고 했었던 바 한때 나는 이런 나의 습성을 무한소(無限小) 미분(微分)을 통한 운동의 함수화가 매순간의 운동체의 위치 파악을 가능하게 한 사건에 비유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 현명한 비유도 아니고 겸손의 예법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스피노자의 초상화를 보는 순간 자신의 전생은 물론 내생까지도 환하게 꿰뚫게 되었노라 한 내 사숙(私淑)의 스승이 이런 말을 했다.

 

"문자로써는 벨 수 없는 법이다. 말은 슬프게도 칼보다 쉽게 나오는 것, 그리고 이 쉬움이 허영의 첩경이다.”(김영민 지음 공부론‘ 175, 176 페이지) 글쓰기에서 멋이라도 내려는 마음이 있으면 그렇게 일방적으로 못 쓰지는 않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강하다고 했거니와 이 말은 아예 칼보다 쉽게 나오는 글 자체가 허영의 산물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물론 허영이 꼭 나쁘지만은 않으리라. 최근 황산의 글쓰기의 모험 - 철학자들과 함께 떠나는을 주문했다. 이 책을 낸 출판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인문학 공부를 하는 것과 인문학 기반이 단단한 글을 쓰는 건 같지 않다.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공부가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작용만 초래할 가능성도 크다. 애써 공부한 것을 써먹으려다 글이 쓸데없이 현학적이 되거나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를 생각했다. 현학적이라 해도 내용이 탄탄하고 시의적절하다면 굳이 문제는 아니리라. 최근 읽고 있는 책이 오디세이아. 트로이 전쟁에 나선 오딧세이의 미인 아내 페넬로페는 남편이 살아 있음에도 구혼 대시를 한 남자들을, 영웅 라에르테스를 위해 수의를 짤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해놓고 밤에는 횃불을 곁에 두고 그것을 푸는 방식으로 속였다.(라에르테스는 페넬로페의 시아버지다.) 처음 읽었을 때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다시 읽으며 느끼게 되는 것은 그런 단순한 속임수가 어떻게 3년씩이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란 점이다.

 

스타벅스의 사이렌 이야기를 하며 가끔 페넬로페 이야기까지 하곤 했는데 그것이 민담 모티프가 그대로 유입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질문을 받았다면 무엇이라고 답했을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탄탄한 설득력을 갖춘 글이 결국 좋은 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유명 영화감독이 쓰레기를 쓰겠다고 마음 먹으니 써지긴 써졌다는 말을 했다는 기사를 최근 읽었다.

 

물론 이 사람은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다. 쓰레기를 쓰겠다고 마음 먹으니 써지긴 써졌다는 말은 완벽주의 때문에 글을 시작하기 전까지 과하게 구상하고 궁리하는 등 자신을 참 많이도 괴롭히다가 결국 완벽과는 거리가 먼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전한 말이다. 나도 잡스런 글은 쉽게 쓰지만 부탁 받는 글이나 중요하게 응모하는 글은 시작점을 잡으려고 많이 고생하는 편이다. 이렇듯 참 많이도 힘들고 이야기 거리가 많은 것이 글쓰기다. 밝은 눈으로 작은 실마리를 날카롭게 잡아내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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