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16
윤원근 글, 이남고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50선 가운데 한 권인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를 만화로 소개한 책이다. ‘창조적 진화를 읽으려면 먼저 기계론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기계론은 자연 현상과 사회현상을 기계처럼 돌아가는 법칙에 의거해 설명하려는 생각이다. 과거의 원인이 현재를 결정한다는 생각을 말한다.

 

세계를 변하지 않는 기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한 뒤 모든 현상을 이 기본 요소들의 결합으로 설명하려는 방식이다. 기계론은 모든 현상에서 법칙을 발견하려고 한다. 기계론에서 시간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시간에 관계 없이 법칙은 적용되기 때문이다. 법칙이란 것은 언제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베르그송 철학에서 시간은 생명의 지속(持續)을 의미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생명과 과학은 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생명은 창조하는 힘이고 과학은 단순한 모방이다. 변화의 가능성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 창조적 진화가 나오게 된 배경은 스펜서의 진화론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스펜서는 다윈보다 먼저 적자생존, 생존경쟁 등의 개념을 사용한 학자다. 다윈은 생물 진화론자, 스펜서는 사회 진화론자다. 베르그송은 스펜서의 진화론이 갖는 문제를 이미 진화가 이루어진 것을 사후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한 데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보았다. 베르그송은 진정한 진화는 직접 그림을 그릴 때처럼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결과를 낳는다고 보았다.

 

베르그송 철학을 이해하려면 생명과 생명체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 구체적 형태를 갖기 위해 물질 속에 들어간 것이 생명체다. 생명체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지만 생명의 참된 성질은 물질적 욕구를 넘어서는 데에 있다.

 

베르그송을 윌리엄 제임스와의 관련하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인간 생활을 끊임 없는 적응 과정으로 파악한 제임스는 인간 의식도 하나의 과정이나 흐름으로 보았는데 이는 생명을 창조적 과정 속의 흐름으로 본 베르그송 사상과 흡사하다. 지속(持續)하는 것은 항상 전체성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흘러가는 물처럼 끊을 수 없다는 의미다. 물은 고정과 정주(定住)를 거부한다.

 

지속하는 시간은 생명의 시간이고 지속하지 않는 시간은 시계의 시간을 말한다. 진주 목걸이를 이어주는 줄이 지속하는 전체 시간에 비유될 수 있다. 과학은 시계의 시간으로 모든 계산을 한다. 지속과 변화는 같은 것의 다른 표현이다. 베르그송 철학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하고 창조를 의미한다.

 

과학에서는 설탕물을 농도, 밀도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지만 설탕물이라는 전체 속에서 설탕과 물은 서로 뒤섞여 있다. 물질적 대상들도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연속적인 흐름으로 나타난다는 의미다. 물론 우리는 그런 점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생명은 지속의 특징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

 

생명의 진화는 지속의 과정을 통한 창조적 진화라 할 수 있다. 과학은 반복 가능한 것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반복 가능한 것을 객관성이라 한다. 기계론과 같은 것이 목적론이다.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이 현재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계론의 과거가 목적론의 목적으로 바뀐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적론도 기계론처럼 생명의 자유로운 창조능력을 부정한다. 기계론이나 목적론은 미래를 예측하려는 눈물 겨운 노력을 의미한다. 들뢰즈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신은 그 자신 안에, 그 자신의 본성 속에 그를 구성하는 속성들 속에 자신을 표현한다. 그는 아무것도 결여하고 있지 않기에 생산할 필요가 전혀 없다.”(’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참고)

 

진화를 적응 과정으로 보는 견해는 두 가지다. 정향 진화론과 다윈 진화론이다. 전자는 진화가 생존에 불리해도 한번 방향이 정해지면 계속 그 방향으로 나간다고 본다. 너무 긴 공작의 꼬리나 아일랜드 큰사슴의 큰 뿔이 대표적이다. 정향진화론은 외부 조건이 생명체의 변화를 직접 일으킨다는 직접적 적응을 주장한다. 후자는 외부 조건이 생존에 유리한 변이들을 선택하고 불리한 변화는 도태시킨다는 간접적 의미의 적응을 주장한다.

 

베르그송은 가리비조개 등의 연체동물의 눈과 척추동물의 눈을 설명한다. 두 동물은 전혀 다른 종인데 눈 구조가 아주 유사하다. 베르그송은 이런 유사성이 나타나는 것을 생물 종들이 동일한 근원을 가지며 이 근원이 하나의 폭발적 힘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고전의 유혹 3‘ 177, 178 페이지) 눈과 같은 기관에서는 두 가지 두드러진 점이 있다. 구조의 복잡성과 기능의 단순함이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엘랑 비탈이 진화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철학이다. 베르그송은 생명의 약동하는 힘을 화약이 폭발하는 힘에, 그에 저항하는 물질의 힘을 화약의 폭발에 저항하는 탄피의 힘에 비유했다. 생명의 진화는 자기 안에 지닌 생명의 약동하는 힘과 그것에 저항하는 물질의 힘이라는 두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베르그송은 동물과 식물을 명확히 구분해주는 기준은 없다고 보았다.

 

모든 생명체들은 초보적인 형태든 잠재적인 형태든 본질적인 특징들을 공유한다. 거기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식물, 동물, 이성의 힘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비탈길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 물질성을 지배하는 질서라면 올라가는 것은 생명의 질서다. 여기서 생명이란 엔트로피의 사선(斜線)을 거슬러 오르는 노력이라는 유명한 말이 나온다. 나는 엘랑 비탈에서 석가모니 부처의 위대한 포기(great renunciation)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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