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 인생엔 미지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1989년 나온 김승희 시인의 시집 달걀 속의 생에 실린 낯선 고향 속으로의 일부다. 즐겨 읽는 시다.

 

가을 햇빛 아래 링겔 바늘을 팔뚝에 꽂고 죽음이 가까운 미소를 지으며 세브란스 병원 마당을 지나가는 환자복의 아이를 보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 인생엔 미지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는 상념에 젖는 시인의 이야기다. 몸이 많이 아팠을 때는 내가 시의 아이라도 된 듯 읽고 비감(悲感)해 하던 시다.

 

이런 읽기 후 이어지는 것은 슬픔과 감동 덕에 책을 덮는 것이었다. ‘달걀 속의 생에서 내가 외우는 유일한 시는 낯선 고향 속으로다음 다음 시인 목련꽃 필 때. 만개한 봄산의 백목련을 흰 만장(輓章)으로, 자목련을 붉은 색 만장(輓章)으로 상상한 시다.

 

봄산에서 만난 흰 현호색(玄胡索)을 현호색이 상복을 입은 것으로 표현한 조용미 시인의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인상적인 구절이다. 오늘 아침 뒤늦게 전기한 두 시 사이에 숨은(?) 시를 알게 되었다. ‘모래내에서 연신내로란 시다.

 

모래내에 살 때부터 강물보다 모래를 더 많이 보았지만 모래내라는 이름 속에서 물을 느끼고서 풍경(살풍경)에 절망하기보다는 말 속에서 미래를 꿈꾸는 버릇을 가졌다는 시다. 꿈꾸지 않는다면 봄날 쇼윈도우 밖에 내걸린 드라이 클리닝된 세탁소의 옷처럼 계속 메말라 쌓여가는 패각총(貝殼塚)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시다.

 

이혜원 평론가는 김승희 시인의 시 세계를 죽음의 부정과 초월의식, 일상성의 부정과 비상의 욕망, 제도의 부정과 현실 비판, 제국주의의 부정과 여성의 재인식의 단계로 발전했다고 정리했다.(’자유를 향한 자유의 시학참고)

 

김승희 시인은 여성을 woman이라 표현할 때의 어원이 바로 woe 즉 늑대 + man이란 사실을 아는가 묻는다. 야성의 늑대를 원형으로 하는 원초적인 신성한 어머니의 원형이 기독교의 영향으로 손상되고 마녀재판 등으로 학살되었다는 것이 김승희 시인의 메시지다.(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추천의 글)

 

이 해설은 아담의 첫 번째 아내 릴리스(Lilith)를 연상하게 한다. '사이코의 섬이란 책에서 베드로가 바울에 대해 한 말은 바울에 대해서보다 베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한다.“란 인상적인 말을 전한 한스 요하임 마츠가 쓴 책 가운데 릴리스 콤플렉스가 있다.

 

아담의 첫 번째 부인 릴리스는 남녀동등권을 주장하며 쾌락을 즐기고 모성애를 거부한 여성이다. 최근 나온 신승철의 장편 소설 아담의 첫 번째 아내의 첫 번째 아내는 바로 릴리스를 말한다.

 

'아담의 첫 번째 아내'는 릴리스 - 순빈 봉씨 박지연(역사를 근거로 다시 쓴 후사의 주인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순빈 봉씨는 여종과의 동성애로 폐출된 세종의 며느리(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로 주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기보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선 능동적 여성이다.

 

책을 들면 내려놓기 힘들게 만드는 책이라는 평이다. 조선사 공부를 위해서라도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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