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의의 세례를 넘치도록 받은 지식인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곤 한다. 그런 지성들과 비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인문주의의 물 몇 방울에 노출된 물 부족인(不足人)이다. 더구나 체계적이지 않은 독서로 양으로 상징되는 중요한 일상을 잃어버린 독서망양(讀書亡羊)이란 말이 맞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충분히 읽은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겉도는 이야기를 경계하고 단편적 이야기를 지양(止揚)하고 자연과학으로부터 소스를 얻어 인문적 이야기를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렇게 애쓰는 것 이상으로 인간적 품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계속 공부와 인성이 함께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단정하고 예의 바른 표현이 바람직한 인성을 확증하지 않지만 거친 표현을 하는 사람이 바람직한 인성을 지니기는 어렵다. 단정과 예의는 신중함으로부터 싹트고 배려의 형태로 표출된다. 어제 인사로부터 논쟁을 걸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논쟁을 하려한 것이 아니라 과학 이야기를 한 그 인사에게 그가 한 이야기와 관련 있는 사실을 그가 아는가 물었을 뿐이다. 그것을 과시욕에 기반한 논쟁심의 표출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평소에 내가 어제처럼 그로 하여금 논쟁 운운하는 말을 할 여지를 주었는지 돌아보고 있다.

 

어제 그는 그가 전한 메시지와 무관한 과학 이야기를 퀴즈 형태로 꽤 여러 개 제시했고 내가 "제가 말하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란 말을 했음에도 어떤 말을 하려는 것인지 듣지 않고 논쟁하지 말라는 말을 한 것이다.

 

어제 그는 내가 지구 지름을12, 800km라 하자 12, 760km라 정정했다. 물론 그가 제시한 수치가 정확하겠지만 그런 정확함은 엄밀한 논문 작성이 필요한 상황에서나 필요할 뿐이다. 내가 말하려 한 것은 태양 지름은 지구 지름의 대략 100(1,280,000km)로 태양 중심에서 헬륨 원자핵과 함께 생성된 빛 입자 즉 광자(光子)가 표면까지의 거리인 640,000km를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진공 상태가 아니기에 2초 정도가 아닌 무려 100만년이라는 사실이다.

 

태양 내부에서 광자가 1cm를 움직일 때마다 원자 또는 전자와 부딪히기에 100만년이라는 놀라운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 또는 객관적 수치 이상으로 그런 것들에 기반한 사실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를 스토리텔링 형태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엄밀한 수치를 논해야 할 때도 있지만 어제 이야기에서는 엄밀함이 필요 없었다. 100만년 이야기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원자나 전자의 방해를 받는 태양 내부의 광자처럼 진공이 아닌 지구라는 무대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얽히고 설킨 관계가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의 지질(地質) 이야기에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삶이란 퀴즈처럼 단편적 사실을 전하거나 맞히는 무대가 아님을 그가 인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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