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투성이 과학 - 지금 이 순간 과학자들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진짜 과학 이야기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 지음, 김아림 옮김 / 리얼부커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패는 난감한 일이다. 그래도 무언가 얻는 바가 있으리라. 실패를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생물학 교수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은 과학 분야에서 실패가 갖는 의미와 가치 등을 논한다. 파이어스타인에 의하면 과학은 실패 그 자체가 목표인 학문이다. 사실상 모든 과학적 노력은 실패 그 자체를 목표로 한다는 것인데 이는 과학적 발견과 그것으로 얻은 사실들은 임시적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끊임없이 개정되고 있다. 과학에서 틀렸는데도 쓸모가 있는 경우가 있다. 개체발생은 계통 발생을 되풀이한다(ontogeny recapitulates phytogeny)는 말이다. 오랫동안 사실이라고 알려졌던 이 말은 알(또는 자궁) 속에서 어떤 유기체의 배아가 발생하는 전체 과정이 그 유기체가 진화해 온 모든 단계를 다시 거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다.

 

아인슈타인은 평생 실패와 함께 살았다. 때로는 실패가 성공보다 더 많은 이해를 가져다준다. 실패가 없으면 과학도 없다. 진화 그 자체도 경이로운 실패의 결과물이다. 지금껏 지구상에 얼굴을 비췄던 생물 종의 99% 이상은 현재 멸종했다. 닐스 보어는 전문가란 굉장히 좁은 분야에서 가능한 온갖 실수를 전부 저지른 사람이란 말을 했다.

 

사무엘 베케트는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는 말을 했다. 잘 실패한다는 말은 일부러 성공을 피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베케트는 이미 성공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잘 실패한다는 말의 의미는 자기가 알고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는 의미였다. 무지란 자기 자신에 대한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장소다. 잘 실패한다는 것은 뻔한 것 너머를 바라보거나 우리가 아는 것 그 너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너머의 것을 본다는 의미다.

 

잘 실패하려면 질문을 던지고 결과를 의심하며 불확실성에 푹 젖어 들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실패란 그것이 습관이 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좋은 것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이 깊은 무지를 드러내는 방식은 실패 뿐이다. 실패에서 실패로 엮이며 나아가는 반복적인 과정이야말로 과학이 진보하는 방식이다.

 

조금씩 개선되며 나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피드백을 조금 덜 전문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바꾸면 실수 교정 작업이다. 세렌디피티란 개념에 대해 저자는 한 마디 한다. 세렌디피티는 예상하지 못한 행운, 우연한 발견이란 의미다. 사실 소위 말하는 행운의 발견은 열심히 일하다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나온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과학적 진보는 단순하고 매혹적인 행운에 의해 갑자기 나타나기보다 멍들고 깨지는 사건과 실패, 길고 힘든 수정 작업에 의해 이루어진다. 과학은 난처함과 혼란, 회의주의, 실험이라는 환경을 자양분으로 먹고 자란다. 이것과 다른 방식은 과학을 경직시키고 근거 없는 믿음을 퍼뜨릴 것이다. 성공이 대단하고 흥미로울수록 그것을 얻기는 어렵고 실패로 이어질 확률도 높아진다.

 

훌륭한 과학자라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발견하는 데 능해야 한다. 실패는 더 새롭고 더 훌륭한 문제를 찾아내는 가장 믿음직한 원천이다. 실패할 확률이 높을 때 과학의 지지자들은 열정을 보인다. 우리는 성공적인 과학에 대해서만 배우지 실패한 과학은 배우지 않는다. 이러면 과학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학을 이루는 모든 사실들은 사람들이 수많은 실패를 딛고 힘들게 얻은 결과다.

 

과학은 단지 교과서 속에 깔끔하게 박제되어 보존 처리되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인류의 모험이다. 그리고 모든 인류의 모험이 그렇듯 과학에는 실패라는 조그만 구멍들이 송송 뚫려 있다. 실제로 이뤄지는 과학은 잘못된 방향 전환과 막다른 골목, 그리고 한때 사실이었다가 틀린 것으로 판명되는(가끔은 그것이 다시 옳았다고 드러나기도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로 가득하다.

 

기후 과학, 세포, 생물학, 물리학, 화학, 수학을 막론하고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속도로 온갖 실수담이 생겨나는 중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과학의 진보다. 과학자들은 여기저기 손대고 꾸물대고 찔러보는 놀이와 비슷한 일을 한다, 이것은 부자연스런 행동이 아니라 몹시 진지한 일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보통 같은 곳에 속하지 않는 것들을 한데 모은다. 이들은 범주를 넘나들며 작업해 새로운 해법을 찾는다. 이것은 꽤 흥미로운 사후 관찰이기는 해도 창의성을 실제로 발휘하기 위한 처방이라 볼 수는 없다. 결국은 어떤 아이디어를 지녀야 하고, 그것을 서로 떨어진 다양한 영역에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 방법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이미 아는 지식이 새로운 질문을 창출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여러분이 확실한 해법을 찾는 중이지만 잘 되지 않는다면 실패야말로 대안적인 답을 찾도록 마음을 열어줄 것이다.(163 페이지) 무능력한 것도 가끔은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에게 겸손을 가져다주고 자아를 초심에 들게 하며, 근면함을 되찾게 하고, 결국에는 자신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실패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19세기에는 오직 자산가들만이 과학자 직업으로도 먹고살 수 있었다. 과학자(scientist)라는 단어 자체도 이런 사람들을 기술하기 위해 생겨난 말이다.(1833년 케임브리지 출신의 박식가 윌리엄 휴얼이 만든 말이다.)

 

저자는 창의적인 사고를 허용할 정도로 실패에 대한 여유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뭔가를 답하면 거기서 의문이 다시 생겨난다. 그렇기에 언제나 해답보다는 질문이 더 많다. 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도 숱하다. 하지만 어떤 시점에서는 끝을 내야 한다, 그래야 일이 진척된다. 파이어스타인의 이그노런스’(부제: ‘무지는 어떻게 과학을 이끄는가’)를 읽어야 할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