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으로 -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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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세포가 후천적으로 변하는 것을 뇌 가소성 또는 신경 가소성이라고 한다. 신경 가소성(可塑性) 분야에서 말하는 뇌 재배선(配線)이란 말은 설레는 말이다.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는 바로 그 뇌 재배선을 화두로 삼아 이야기를 시작하는 책이다. 책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 뇌를 다시 배선시키는 수단은 읽기다. 우리 뇌는 새로 학습할 것이 나타나면 시각과 청각 등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구조와 뉴런 같은 본래 있던 부분들을 다시 정렬할 뿐 아니라 같은 영역에 있는 일부 뉴런 집단을 재정비해 새로운 기능을 맡게 한다.

 

읽기는 한때 우리의 고향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읽기 능력을 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책으로는 한때 읽기라는 고향집에 거하던 사람들에게 다시 책을 읽자며 보내는 인지신경학자 저자의 초대장이다. 이 책은 아홉 개의 편지로 이루어졌다. 어린 시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편지 형식의 책을 쓴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편지를 읽으며 마르셀 프루스트가 소통의 비옥한 기적(fertile miracle of communication)이라 부른 특별한 만남을 경험할 수도 있다.

 

저자는 고향집이라는 메타포에 이어 골방이란 메타포를 사용하기도 한다. 정보 과잉의 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소화되고 밀도도 낮으며 지적인 부담도 적은 정보들로 둘러싸인 익숙한 골방으로 뒷걸음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는 것이다. 양손잡이 읽기 뇌(biliterate brain)를 중요하게 여기는 울프는 저자들의 지혜를 넘어 자신의 것을 발견해내는 것을 좋은 독자의 핵심이라 설명한다.

 

저자는 읽는 뇌를 우리 정신의 카나리아(유독 가스 누출 여부를 감지하기 위해 탄광에 들여보내던 새인 카나리아는 그 이후 어떤 징조를 미리 알아보는 수단을 의미하게 되었다.)라 부른다. 저자는 우리가 뇌의 아주 작은 부분만 사용하고 있다는 말을 케케묵은 유언비어라 설명한다. 읽기 회로는 뇌의 좌우 반구 안에 있는 네 개의 엽(전두엽, 측두엽, 두정엽, 후두엽)과 뇌의 다섯 개 층(가장 위의 종뇌, 그 아래 양옆에 붙어 있는 간뇌, 중간층의 중뇌, 그 아래쪽의 후뇌와 수뇌)을 통해 들어오는 입력값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읽는 뇌의 회로 안에는 은하수의 별들만큼이나 많은 연결이 일어난다. 읽기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공감 능력이다. 저자는 공감은 타인을 동정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훨씬 더 중요하게는 타인을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관계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사실은 느낌 - 사고의 신경망 전체가 공감에 관여하는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보이는 사람들 다수는 이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고 감정표현불능증 환자는 아예 능력 자체가 없다.

 

거울 뉴런이 공감과 관계 있는 뉴런이다. 소설을 집중해서 읽을 때와 재미로 읽을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 다르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공감을 통해 우리는 모든 사람이 읽는 뇌 안에서 느낌과 생각이 연결되는 것이 생리적으로나 인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유추의 과정, 추론의 과정, 공감의 과정, 배경 지식의 처리 과정 사이의 연결을 꾸준히 강화하면 읽기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차원에서 유리해진다.

 

읽기를 통해 이런 과정들을 연결하는 법을 계속 배운다면 이는 삶에도 적용되어 자신의 동기와 의도를 구분할 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도 더욱 명민하고 지혜롭게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공감을 통한 연민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전략적 사고에도 도움이 된다.(103 페이지) 깊이 읽기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핵심적인 인간 능력에 시간을 할애하려면 주의의 질이 높아야 한다.(116 페이지)

 

고독 속의 소통이 일어나려면 독자의 고요한 눈은 저자와의 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은 정적(靜寂)을 유지해야 한다.(122 페이지) 우리가 인간적인 삶의 본질적인 복잡성에서 후퇴한다면 우리는 기존의 협소한 지식에만 의지하게 된다. 기존 지식의 기반을 뒤집거나 시험해보지도 않고 기존 사고의 경계선 밖은 내다보지도 않게 된다.(124 페이지)

 

급증하는 정보에서부터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죽처럼 묽은 아이 바이트(eye byte: 한눈에 쉽게 일별할 수 있는 콘텐츠)로 이어지는 현재의 디지털 연쇄에 대해서는 사회 전체의 경계가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의 주의와 기억의 질은 물론 아름다움을 지각하고 진실을 인지하는 능력, 그리고 복합적인 의사결정 능력이 위축되지 않는다.(136 페이지) 우리가 읽는 것은 디지털 연쇄의 다음 연결고리인 쓰는 방식마저 바꿔놓는다.(141 페이지)

 

저자는 이 세상을 사랑할 새로운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읽는다. 그리고 이 세상을 뒤로한 채 자신의 상상 너머, 자신의 지식과 인생 경험 밖에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읽는다.(160 페이지) 이 책에 흥미로운 단어들이 꽤 있다. tl: dr이란 말도 그 가운데 하나다. too long: didn’t read의 약자로 너무 길어 읽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헤밍웨이가 여섯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보라는 친구들의 권유를 받고 쓴 다음의 문장은 시린 감동을 준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사용한 적 없는 아기 신발 팝니다.’란 문장이다.

 

읽기 연구가인 저자는 아들 벤 이야기를 한다. 창의적이고 놀라울 정도로 지능이 높은 그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쉬운 읽기 스킬에서 문제를 지닌 아이 즉 난독증 아이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한 좋은 사회의 세 가지 삶에 대해 말한다. 세 가지 삶의 첫 번째는 지식과 생산의 삶이고 두 번째는 즐기는 삶, 세 번째는 관조의 삶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관조의 삶이다. 독서에도 적용되는 미덕이다.

 

좋은 독자의 세 번째 삶은 읽기의 절정이자 두 삶의 종착지인 관조적 독서의 삶이다. 우리 안의 관조적 차원은 타고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주의와 시간을 들여 유지해야 한다. 저자는 읽기의 기쁨이 삶을 바꿀 만큼 중요함을 보여준 예로 히틀러를 타도하려는 계획에 가담했다가 투옥되어 처형당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를 든다. 본회퍼가 나치 수용소에서 쓴 옥중서신에는 곤경에 처해서도 꺾이지 않는 정신이 그려져 있다. 본회퍼는 자신이 읽은 모든 책에서 순수한 행복을 얻은 사람이다.

 

아이들의 지적 발달은 두 원칙(전통적인 유형의 지식과 디지털 문화) 사이에서 계속 진화해나가면서 사려 깊은 균형을 찾는 것에 달려 있다. 저자는 아이들이 사용자와 늘 조금은 떨어져 있고 약간은 대용품 같은 스크린을 접하기 전에 책의 물리적, 시간적 존재감을 먼저 체험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 너무 빠르게 인지적으로 전자 기기에 내맡겨진 채로 끊임없이 화면에 빠지게 되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무릎에 앉아 그 사람이 자신에게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소리를 듣는 체험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203 페이지)

 

부모들이 아이(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빈도가 줄어드는 것은 이해도 못하는 아기에게 읽어주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란 착각 때문이기도 하고 디지털 기기의 발달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다.(207 페이지) 금지된 열매에 집착하고 때로 그것을 신비화해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강박의 동물이기도 하다.(215 페이지) 자신의 주의를 사로잡는 것에 집착하는. 아이들이 그러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저자는 국가 보고서 카드를 참고하며 미국의 초등학교 4학년생 가운데 3분의 2가 읽기 능력이 능숙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초등학교 4학년은 미래의 학습력이 달린 시기다. 저자는 국민 개개인이 능숙한 수준의 읽기 능력을 갖춰야만 비로소 각자가 계속 정교한 읽기 기술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나라의 지적, 사회적, 육체적, 경제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텐데 미래 미국 시민의 3분의 2 이상이 그 근처에도 이르지 못한 상태임을 걱정한다.

 

언어와 학습 능력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엄청난 격차가 수백만 아이들의 삶에 영구히 고착되기 전에 우리 사회가 제대로 훈련된 전문가들을 갖춘, 더욱 종합적인 유년기 프로그램에 투자해야 한다고 한다. 미국 아동은 공식적인 학교교육이 시작된 첫날 이미 인지적, 언어적 차이가 심대한 상태라고 한다. 나이와는 상관 없이 읽기 회로 전체를 도덕적 상상력으로 연결하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의해 바뀔 수 있다.(246 페이지)

 

여덟 번째 편지는 양손잡이 읽기 뇌 만들기란 제목의 글이다. 양손잡이 읽기 뇌란 두 가지 읽기 능력을 모두 갖춘 뇌를 의미한다. 두 가지란 인쇄 기반 읽기 회로와 디지털 기반 읽기 회로를 말한다. 깊이 읽기 기술은 주의분산이나 공감력 약화 같은 디지털 문화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결정적인 해독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디지털의 긍정적인 영향까지 강화한다.(266 페이지)

 

저자는 자신은 현실주의자이자 낙관론자라고 말한다.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언급한 세 가지 삶(지식과 생산의 삶, 즐기는 삶, 관조의 삶)을 언급했던 저자는 이 가운데 관조의 삶은 타고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의와 시간을 들여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한다.(285 페이지)

 

저자는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란 라틴어 즉 천천히 서두르기란 개념을 선보인다. 거시적으로는 미래를 만나기 위해 서두르되 우리 편에서 최선을 단한 생각으로 천천히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미시적으로 페스티나 렌테는 좋은 독자의 읽기 회로가 보여주는 전체 궤적을 상징한다. 먼저 지각한 것은 자동적으로 해독을 거쳐 개념으로 변형된다. 이때 시간은 의식적으로 느려지고 우리의 자아 전체는 생각과 느낌이 합쳐지는 정신적 폭포수로 젖어든다. 우리는 서둘러 그 안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 독자의 내적 자아가 거주하는 이 보이지 않는 집을 잘 묘사한 것으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 나오는 램지 부인에 대한 묘사만한 것도 드물다.

 

저자는 읽기의 기쁨이 삶을 바꿀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박한 환경 속에서 누구보다 분명히 보여준 역사적 인물로 디트리히 본회퍼를 든다. 매리언 울프가 만일 우리 역사를 알았다면 안중근 의사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두 인물 모두 옥중에서 남다른(평온한, 곤경에 꺾이지 않는) 정신을 보여주었다.

 

신에 대한 믿음을 상징하는 책을 포함해 인생과 자연의 가장 깊은 선함에 대한 불굴의 희망을 상징했던 책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본회퍼를 지켜주었다저자가 전하는 핵심은 우리가 디지털 연쇄 작용의 잠재적 위험을 모르고 있다가는 우리의 가장 반성적인 능력이 위협받을 수 있으며 결국 민주 사회의 미래에도 심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295 페이지) 저자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다양한 견해들의 표출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지적 능력을 발휘해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도록 교육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9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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