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거미 - 자연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박지형 지음 / 이음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피노자의 거미란 거미를 관찰하던 스피노자의 만년에서 비롯된 제목이다. 저자는 제한된 자원이 소수의 생물에 의해 독점되기보다 비교적 고르게 배분되어 다양한 생물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생태계의 원리를 자연의 민주주의라 부른다. 저자는 환경생태학자다. 생물학이 세포나 분자 수준에서 생명현상을 다룬다면 생태학은 보다 긴 호흡으로 생명의 신비를 노래한다.

 

홉스는 나의 어머니는 쌍둥이를 출산했다. 나와 공포를이란 말을 했다. 공포는 홉스의 어머니가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을 침략하는 것에 놀란 것을 두고 이르는 말로 이로 인해 홉스는 조산아로 태어났다. 홉스는 왕과 국교를 중심으로 왕권을 강화하려 한 왕당파와 의회를 통해 시민의 권리를 옹호하는 의회파 사이의 극심한 대립과 전쟁을 경험하며 공포의 시대를 벗어날 이성적 묘책을 궁리한 홉스의 화두를 이야기하며 저자는 자신의 책의 핵심 질문과 홉스의 이야기가 연결된다고 말한다.

 

홉스 같은 근대의 기획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자연은 실제로 항구적인 전쟁 상태인가?”(44, 45 페이지) 홉스는 인간 본성상 항구적인 전쟁 상태는 불가피하므로 사회적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는 개인의 권리를 위임받은 강력한 주권이 필요하다고 보았다.(187 페이지) 제한적인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개체들 중에 주어진 환경 조건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개체가 살아남는 것을 찰스 다윈은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약자가 항상 경쟁에 져서 완전히 도태된다면 지구상에는 소수의 강자만이 남아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구한 진화 과정에서 생물다양성은 감소하지 않고 증가하였다.“(47 페이지)

 

네덜란드의 유대인 이민자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무신론자라는 죄목으로 유대인 사회에서도 추방당한 스피노자는 유럽이 주도한 근대적 질서의 모순과 혼동을 자신의 개인사 속에 구현했다.(54 페이지) 스피노자가 태어난 해는 1632년이다. 이 해에 서양 근대사에서 이름을 남긴 인물이 여럿 태어났다.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현미경을 개발한 레이우엔훅,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르, 존 로크 등이 그들이다. 17세기는 어떤 시대였는가? 중세적 현상으로 생각하기 쉬운 마녀사냥이 최고조에 달한 때가 바로 17세기다. 독일의 30년 전쟁이 일어난 때도 17세기다. 네덜란드의 17세기는 공화주의자 더빗을 살해하고 왕당파를 추종했던 네덜란드 대중의 광기와 노예적 이성의 시대였다.

 

경제 버블의 원조격인 네덜란드의 툴립 피버(tulip fever)17세기에 일어났다.(한국사 이야기여서 그렇지만 17세기 조선에서는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기해예송, 갑인예송,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 등이 일어났다.) 1675년 페르메르가 숨을 거두었다.

 

2017년 세상을 떠난 존 버거는 발렌티너의 렘브란트와 스피노자를 인용하며 같은 시기에 암스테르담에 살았던 두 인물이 각자의 방식으로 교회의 권위에 저항하며 싸웠다고 말했다. 렘브란트가 파산 선고를 받은 해에 스피노자는 유대교회에서 추방당했다. 1656년에 일어난 일이다. 스피노자가 거미를 관찰하며 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들뢰즈는 스피노자가 파리를 잡아먹는 거미를 보며 죽음이라는 환원불가능한 외재성에 대해 사색했을 것이라 말했다.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동물을 먹이로 삼지만 사는 동안에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에 억압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리라. 스피노자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거미뿐 아니라 자연의 다양한 질서를 관찰하여 체계적인 생태 이론을 정립한 위대한 생태학자가 되었을지 모른다.(85 페이지)

 

허버트 스펜서는 적자생존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복잡한 다윈의 이론을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다. 복잡한 이론이 쉽게 이해되는 장점은 있지만 적자생존으로 단순화된 진화론은 자연뿐 아니라 인간 사회를 항구적인 전쟁터로 오인하게 할 위험이 있다.(91 페이지) 다윈과 게오르기 가우스가 생물 간의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궁극적으로 알고 싶어 한 것은 경쟁배제 자체보다는 경쟁을 넘어선 공존의 비밀이었을지도 모른다.(102 페이지)

 

간디는 자신이 정말로 필요하지 않은 것을 받는 것도 도둑질이라 말했다. 그의 이 말은 스피노자의 신 즉 자연을 생각하게 한다.(177 페이지) 그 자체의 필연성에 따라 존재하고 작용하기 때문에 자연에는 넘치는 것도 모자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스피노자는 어둠을 직시하고 어둠 너머 어렴풋이 비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까지 누구도 진정한 인간해방과 절대민주주의를 상상하지 못했기에 스피노자의 사상은 네그리의 말처럼 너무 이질적인 야성적 파격이라 할 수 있다.(179 페이지)

 

홉스가 자연상태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대립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계약을 통해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고 보았다면 로크는 인간은 자연상태에서도 개인의 권리를 상호 인정하는 사회를 인정하는 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187 페이지) 오직 계약을 통해서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끝내거나 타고난 권한을 신장시킬 수 있다고 믿은 사회계약론자들과 달리 스피노자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묘사한 자연상태에서 개인들은 하나로 결합할 때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권리를 집단적으로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192 페이지) 기득권 세력이 보이지 않는 발로 뛰어다니며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는 인간 사회보다는 자연생태계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더 잘 작동한다.(219 페이지) 홉스가 자연상태에서의 혼란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절대권력을 가진 왕권을 옹호한 것과 달리 스피노자는 개인을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다중의 지배를 꿈꾸었다.(224 페이지)

 

다중에 의한 자율적 사회 구성은 전통적인 계급론의 관점으로는 잘 파악되지 않는 개념이지만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다중은 실체를 드러냈다. 저자는 사회의 올바른 구성 원리를 고민하던 스피노자에게 거미 관찰이 영감을 준 것처럼 자연에서 얻은 생태적 상상력이 한계에 봉착한 근대적 민주주의의 대안을 찾아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좋은 길 안내자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243 페이지) 이제 프레데리크 로르동의 정치적 정서를 읽어야 할 순서다.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정이란 전통적 이원론을 전복하고 변용과 정서의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스피노자에 대해 전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