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 묘()라는 글자에 얼굴의 의미(: )가 있고, 얼굴 모()에 사당(祠堂)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우여곡절 끝에 알았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 초상화에 관한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외국의 경우 얼굴의 흠을 못 본 듯 그렸지만 우리나라는 우직스러울 만큼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그렸다고 전제한 뒤 조선 선비들의 정직함을 선비정신의 발현으로 설명했다.

 

선비정신이 무엇일까? 선비정신이란 의리 정신이자 불의에 항거하는 비판적 저항정신이다.(계승범 지음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43 페이지) 문제는 누구를 위한 선비정신이며 무엇을 위한 선비정신인가, . 적어도 조선사에서 선비들은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정치무대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고미숙 선생의 고산 윤선도 평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윤유기는 본래 간사하고 독한 사람으로 그 성질이 독사와 같고 행실은 개, 돼지와 같습니다. 집안에서 처신하는 것으로 말하면 어머니가 죽었는데 장사 지내지 않았고, 아버지의 첩을 팔아먹었으며 재산 다툼으로 형을 죽였습니다... 간사한 인간의 비위를 맞추고 자기 아들 선도를 달래어 글을 올림으로써 조정을 모함하고 선비들을 일망타진하려 하였으며 이이첨을 공격한다는 핑계 아래 전하를 모함하면서...”

 

사헌부와 사간원이 연합하여 광해군에게 올린 상소다. 고미숙 선생은 요즘으로 치면 인신공격에 해당하는 사항까지도 시시콜콜하게 들추어내면서 반대편의 부도덕함과 허위를 가차 없이 몰아붙이는 이런 언술에서 조선조 선비들의 도학적 이미지를 떠올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종종 아수라장을 연출하는 요즘의 국회의사당을 방불케 하는바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투쟁이란 이렇듯 진흙탕의 개싸움 같은 형상을 연출하기는 매일반인 셈이라고 결론지었다. 정치 무대에서 저러했으니 그들은 개인적 심성이 뛰어났을수록 더욱 위선적이고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면모를 연출할 수 밖에 없었다.

 

앞서 초상화 이야기에 언급된 조선 선비들의 놀라운 우직함은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시시콜콜하게 들추어내면서 반대편의 부도덕함과 허위를 가차 없이 몰아붙이는 가학적인 언행과 사고 구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한 가닥의 털, 한 올의 머리카락이라도 달리 그리면 안 되는”(‘승정원 일기의 표현) 초상화 제작 지침은 조선의 주자학 유일사상 체제를 생각하게 한다. 한 가닥의 털, 한 올의 머리카락이라도 달리 그리면 안 되었기에 얼굴의 온갖 못나고 부끄럽고 추한 모습까지 있는 그대로 그린 것이다. 시대에 따라 다르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조선에서 주자학은 학문이 아니라 종교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틀림이 없다는 말에서 하나님을 주희(주자)로 치환하면 조선의 주자학 유일주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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