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이 시귀(蓍龜)라 칭한 미수 허목(1595 1682). 점칠 때에 쓰는 가새풀과 거북이란 말에서 유래한 시귀란 시()의 귀신이 아니라 점칠 것도 없이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숙종의 말은 주역에 능통한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는 말을 상기시킨다. 주역의 대가였던 미수는 병중(病中)에도 누워서 주역을 읽었다. 미수는 숙종으로부터 은거당(恩居堂)을 하사받았다.

 

미수 이전에 임금으로부터 집을 하사받은 경우는 둘이었다. 방촌(厖村) 황희가 세종에게서 영당(影堂)을 받았고, 선조 때 활약했던 오리(梧里) 이원익이 인조에게서 관감당(觀感堂)을 받은 것이다. 84세에 우의정에서 물러나 연천으로 돌아온 미수는 은거당에 은거(隱居)했다.

 

리은시사(離隱時舍)는 명재 윤증(1629 1714)의 고택이다. 리은(離隱)1) 속세를 떠나<> 은둔<>한다는 의미라 주장되기도 하고, 2) 알맞은 때에 은둔<>을 벗어난다<> 즉 세상에 나아간다는 의미라 주장되기도 한다.

 

나는 2)를 지지한다. 주역의 첫 괘인 중천건(重天乾)괘를 설명하는 효사 가운데 현룡재전 이견대인(見龍在田 利見大人)이란 말이 있다. 잠겨 있던 용<잠룡: 潛龍>이 물 밖으로 나와 밭에 나타났으니 대인을 만나보는 것이 유리하다는 의미다.

 

물론 주역 중천건괘에는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란 말도 있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나타났으니) 대인을 만나보는 것이 유리하다는 의미다. 이 이견이란 말에서 경복궁 경회루의 동문 중 하나인 이견문(利見門)이란 이름이 유래했다.

 

어떻든 은둔도 때를 따라야 하는 것일 수 있지만 정녕 알맞은 때를 따라야 하는 것은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리은시사를 세상에 나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윤증은 한번도 벼슬하지 않았지만 이산(泥山)에서 송시열을 상대로 소론의 논리를 만들었다.

 

소론(少論)인 윤증이 노론(老論)인 송시열(1607 1689)의 정적이었듯 남인(南人)인 허목 역시 송시열의 정적이었다. 나로서는 세 사람이 모두 당시로서는 드물게 80을 넘겨 살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허목 88, 윤증 86, 송시열 83)

 

아깝게(?) 80 문턱인 79세에 세상을 떠난 맹사성은 최영 장군의 손녀 사위였다. 맹사성의 조부 맹유는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자 이에 반발해 두문동에 들어가 은거해 버렸다.

 

이때 맹유의 나이는 78세였다. 맹사성의 아버지 맹희도는 충청도 서천으로 숨어 들었다. 맹희도는 아들 맹사성에게 고려 왕조는 더 이상 없다. 마침 네 스승인 권근이 너의 출사를 권하고 있으니 새 왕조에 몸을 담아 백성만을 바라보는 정치를 해라.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은 너의 할아버지와 나로 충분하다.는 말을 했다.

 

맹사성은 조선 건국에 대한 노골적 거부 의사를 철회한 아버지를 보며 새 왕조에 출사(出仕)했다.(신동욱 지음 조선 직장인 열전’ 90 페이지)

 

연천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이양소(李陽昭), 김양남(金揚南) 모두 조선 건국에 협조하지 않고 은둔한 사람들이다. 태종 이방원과 동문수학했거나 친구였던 두 사람은 태종의 부름을 끝내 거절했다.

 

연천(漣川)의 연()은 물 이을 연이기도 하고 눈물 흘릴 연이기도 하다. 이양소로부터 거절당한 태종의 눈물이란 데서 연천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정확한 것은 장담할 수 없다. 이름의 유래가 중요한 것은 아니리라.

 

정도전, 정몽주, 이방원을 비롯 여러 군상들이 빚어낸 고려 말, 조선 초 정치사회가 새삼 관심을 끈다. 나로서는 이제 조심스럽게 고려로까지 관심을 넓힌 셈이다. “이번 겨울에는 동네 아이들을 모아 비어 있는 들판에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볼까.”란 말을 한 한 작가처럼 나는 아직 남은 겨울에 서점에 들러 해당 책들을 찾아야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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