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진의 ‘제왕의 책’을 읽고 리뷰를 썼다. 2020년 나의 첫 리뷰 도서다. 성종(成宗)의 소학, 선조(宣祖)의 주역, 정조(正租)의 서경 등이 인상적이었다. 조선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면도 있고 매력적인 면도 있음을 다시 느꼈다.
성종이 소학을 읽은 것은 부부 불화의 원인을 아내인 폐비 윤씨에게 돌리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이고, 선조가 주역을 읽은 것은 왜란 시기의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방편이었고, 정조가 서경을 강조하며 요순(堯舜)을 도덕적 모범자로서의 군주가 아닌 정치의 한복판에서 권력의 중심을 잡았던 적극적 정치가로 재정의했다는 사실 등은 인상적이다.
갖은 이유를 들어 경연(經筵)에 임하지 않았던 연산은 만취한 상태에서 춘추(春秋)를 강(講)하게 한 적이 있다. 그렇게 싫어하던 경연을 만취한 와중에 시행한 의도는 오랜만에 신하들과 흥겨운 자리를 가지면서 그들이 그토록 바라는 것을 들어준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여주가 고향으로 도봉에 사시는 김선생님께서 지난 해 말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등 고향의 두 릉과 거주지인 도봉의 연산군 묘를 친구들과 함께 돌 것이라며 자료를 부탁하셨었는데 이번 기회에 우선 김범의 ‘연산군’을 읽고 정리해 글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는 사화를 비롯한 연산군, 중종 시대의 주요 정치적 사건을 훈구와 사람의 구도가 아닌 삼사(三司: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역할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갈등과 충돌로 파악한 에드워드 와그너의 논의가 소개되어 있다.
‘제왕의 책’에서 연산군과 관련해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 몇 군데 있다. 연산군이 자신의 친모가 폐비가 되어 사약을 받았다는 사실을 즉위 초에 이미 알았다는 것, 연산군이 쫓겨난 것은 자신을 믿고 따라줄 세력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폐비 윤씨가 성종의 얼굴에 상처를 냈다는 것은 근거가 불확실하다는 것 등이다.
연산군은 처음 생모의 진실을 알고 수라를 들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잘못한 것이 있어 사약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가 후에 후궁들의 참소(讒訴)가 중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폭발했다고 한다.
연산군을 몰아낸 주역들 가운데 연산군의 최측근들이 많았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언제 자신들에게 칼날이 향할지 몰라 불안에 떨던 측근들이 반정에 가담한 것이다. 윤씨의 잘못을 낱낱이 언급하고 있는 성종이나 대비의 교지에 윤씨가 성종 얼굴에 상처를 냈다는 내용은 없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연산군 일기가 반정 세력들의 논리가 반영된 글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연산군은 폭군이었지만 거기에 개입된 반대 세력의 자기 정당화 논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