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0일 운현궁(雲峴宮), 건청궁(乾淸宮), 러시아 공사관(公使館), 중명전(重明殿) 해설 시간에 주역 이야기를 했다.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에 나오는 바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인 천희연, 하정일, 장순규, 안필주 등의 네 신하의 이니셜을 딴 천하장안(千河張安)을 주역 중천건괘에 나오는 원형이정으로 불렀다는 말을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틀 후인 12월 22일 연천에서 양주팀 해설을 하는 것으로 올해의 해설을 모두 마쳤다. 쓸쓸한 계절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시간이지만 어설프고 서툰 대로 한 해를 잘 마무리지을 수 있어서 뿌듯한 감회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담론’에서 신영복 님은 주역 산지박괘 다음 괘인 지뢰복괘로 강의(‘담론’은 강의를 묶은 책이다.)를 마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산지박은 아래에는 세 음효로 이루어진 곤(坤)괘가 자리하고, 위에는 두 개의 음효와 하나의 양효가 만난 간(艮)괘로 이루어진 괘로 가장 위에 마지막 희망처럼 남은 하나의 양효가 씨 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의미의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해석을 낳는다.
산지박괘 다음의 괘는 지뢰복괘다. 상하가 바뀐 것이다.(산지박은 곤괘가 아래에 자리하고 간괘가 위에 자리하는 반면 지뢰복괘는 간괘가 아래에 자리하고 곤괘는 위에 자리한다.) 신영복 님은 지뢰복괘를, 땅 밑에 우레가 묻혀 있는 괘로 설명한다. 그러면서 산지박이라는 절망의 괘(산지박의 ‘박剝’은 박탈당함을 의미한다.)가 지뢰복이라는 새로운 시작으로 연결된다는 말을 한다.(박괘가 음기에 의해 양기가 침식당하는 괘인 반면 복괘는 양기가 되살아나 서서히 음기를 제압해 가는 괘다.: 신원봉 지음 ‘주역’ 233 페이지.. 세부 해석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큰 틀로 보고 넘어가기로 한다.)
‘주역(周易)’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원형이정(元亨利貞)에 대한 해석이 어렵기 때문이다. 주역 64괘 가운데 60개에 원형이정이란 말이 들어 있다. 그러나 원형이정에 대한 해석은 너무 다기(多岐)하다. ’문언전’은 원, 형, 이, 정 네 글자를 각각 떼어 해석했고 왕필 이후 정이와 주희는 원형과 이정으로 떼어 해석했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원형이정을 하나로 붙여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어떻든 원형이정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면 주역 이해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체적인 해석은 주희가 제시한 춘하추동 사시론으로 수렴한다. 서대원의 ‘주역 강의’의 논의가 마음에 든다. 서대원 선생은 원을 혼돈의 시기로, 형을 창조의 시기로, 리를 왕성한 활동의 시기로, 정을 소멸의 시기로 본다. 그렇다면 흥선대원군은 정녕 천하장안을 원형이정으로 불렀을까? 흥선대원군을 파락호(破落戶)로 설명한 김동인의 소설에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일단 인용은 했지만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