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黃喜: 1363 - 1452)는 언언시시(言言是是) 정승으로 불렸다. 다툼을 벌인 두 여종에게 모두 옳다고 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아내에게 부인의 말도 옳다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였다. ‘탈무드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랍비가 경전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 두 학생에게 모두 정답이라 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에게도 정답이라 한 것이다.(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 지음 구멍투성이 과학‘ 273 페이지)

 

파이어스타인은 이사야 벌린의 다원주의를 설명한다. 벌린은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하나의 큰 진실을 안다는 고대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쿠스의 말을 응용해 여러 작가와 사상가, 예술가들을 분류한 사상가였다. 파이어스톤은 벌린의 다원주의를 주관주의나 상대주의가 아닌 여러 가지가 괜찮다는 것에 가깝고 구체적으로는 여러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라 설명한다. 나는 벌린의 생각에 공감한다.

 

지질 용어인 인류세(anthropocene)란 말도 벌린의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인류세란 과거 1만년에서 12천년 동안 지속되었던 온난한 신세(홀로세)를 대체하는, 인간이 지배하는 지질학적 시대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배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뉘앙스가 담긴 말이다.

 

지구가 환경, 기후 등의 문제로 몸살을 앓는 것이 인간의 책임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이 지구에서 다른 생명 없이 인간이라는 종만이 홀로 살아가는 고독한 시대라는 의미에서 에레모세(Eremocene)란 개념을 제안했고 도나 해러웨이는 인류세는 인간의 힘과 능력을 터무니 없이 과대평가하는 개념이라는 이유로 가이아, 메두사 등과 같은 다양한 이름을 통칭하는 쑬루세란 개념을 제안했다.

 

윌슨의 말을 수용하는 데는 생각해볼 점도 있다. 윌슨의 말은 무언가를 파괴하고 망치는 데 인류(대부분 선진국, 자본에 의한 것이지만)는 독존(獨存)인 듯 행동하지만 인류는 사실 수많은 동식물, 미생물, 지구 환경, 태양 등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나는 인류는 부정적인 영향력은 크지만 긍정적인 면에서는 근본적으로 무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가난한 아시아나 아프리카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과소비적인 유럽의 책임이 크다는 의미에서 유럽세란 개념이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고 자본이 결정적인 문제의 근원이기에 자본세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나름으로 다 설득력이 있는 한편 모두 결정적이지도 못하다. 물론 문제는 용어가 아니리라.

 

가이아의 저자 제임스 러브록은 원자력 발전소가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유일한 길이라는 말을 했다. 이에 한 논자는 그 주장의 옳고 그름보다 어떤 대가와 희생을 치르더라도 현재의 풍요와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안달하는 우리의 욕망을 안타까워 한다는 말을 했다.(‘인류세와 에코바디참고)

 

인도양의 작은 섬 두 곳에서 매년 57만 마리의 소라게가 플라스틱을 먹고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사용되는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석유와 천연가스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탄화수소 분자들로 만들어진다. 허먼 멜빌이 모비 딕을 발표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1859년 에드윈 드레이크가 세계 최초로 기계식 석유 시추에 성공한 이래 본격적으로 석유시대가 열렸다.

 

만일 그때 석유 시추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마도 고래를 그림책에서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고래는 등불을 밝히는 기름과 윤활유의 원천이었고 페인트, 가죽제품, 방직품, 비누, 양초, 여성들의 코르셋, 양산, , 향수 제조에 필요했다. 한마디로 19세기의 포경(捕鯨)산업은 정유산업이자 석유화학산업이었다.

 

인간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서 미국에서만 해도 매년 8천 마리 가까운 고래를 잡았다. 19세기의 반세기 동안 약 40만 마리의 고래가 희생되었다. 멜빌의 모비 딕은 커피 브랜드 스타벅(‘모비 딕에 나오는 고래잡이 배 피쿼드 호의 일등 항해사가 스타벅이다.)과 사이렌을 말하게 하지만 고래에 대한 충격적 진실을 알리는 매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