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광의 '책사 한명회'를 읽고 있다. 공릉(恭陵)의 주인인 장순왕후 한씨의 아버지이자 세조의 책사였던 한명회를 알기 위해서이다. 박현모 교수의 추천사에 의하면 '책사 한명회'는 상상력과 사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그럼에도 소설 기법의 책이기에 한명회를 다룬 다른 역사학자들의 책을 읽고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명회가 안평을 먼저 만난 뒤 수양을 만난 장면이 인상적이다. 병약한 문종의 이른 죽음이 점쳐지는 바 열두 살의 어린 단종의 즉위가 예정된 상황에서 한명회는 안평이든 수양이든 권력을 잡게 될 것이기에 줄을 잘못 서면 삼족이 멸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움직인다.

 

한명회는 안평으로부터 벼슬을 알아봐주겠다는 제의를 받자 스승이 매듭을 풀지 않고서는 벼슬하지 못하게 했다는 말을 한다. 안평은 풀지 못했고 후에 한명회로부터 같은 매듭을 건네받은 수양은 칼로 단 번에 매듭을 베어버렸다. 이것이 수양과 한명회가 한 편이 된 결정적 계기였다.

 

책 앞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계유정난은 권력에 대한 싸움이었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왕제로서 나약한 문종과 단종을 밀어내려고 했고 황보인과 김종서 등은 문약한 문종과 단종을 등에 업고 신권을 강화하면서 권력을 농단했다."

 

이런 구절도 나온다. '황보인과 김종서가 승하를 앞둔 세종으로부터 어린 세손을 잘 보필하라는 고명을 받았는데 이는 문종이 오랜 동안 보위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세종의 잘못된 선택이었다. 세종이 병중인 문종을 폐하고 수양을 택했다면 조정이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종은 병중인 문종이 애처로워 그를 폐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신병주 교수의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태종이 신권의 비대를 우려하여 폐지한 의정부 중심의 정치체제가 단종의 즉위로 빛을 보게 되었다. 태종대에 추진된 왕권중심제는 세종대에 이르러 왕권과 신권이 조화되는 형태로 나아갔지만 문종과 단종이 연이어 즉위하면서 권력의 균형이 깨지고 신하가 주도하는 정치체제가 자리잡혔다.'는 글이다.

 

계유정난을 신권과 왕권의 대립구도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수양은 2세 연상의 한명회를 형님이라 불렀고 둘의 긴밀한 관계는 사돈을 맺는 데로까지 이어졌다. 세조의 둘째 아들 예종과 한명회의 셋째 딸 송이가 혼인을 한 것이다. 수양은 한명회를 자신의 장자방이라 불렀다.

 

자방은 한고조 유방의 책사인 장량의 자로 장자방이란 명 재상, 명 책사의 대명사를 의미한다. '책사 한명회'는 심경호 교수의 '안평'과 논조가 다르다. '안평'은 문인들의 모임과 정치적 모임이 분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안평의 행보가 수양의 권력욕을 자극했다는 말을 한다.

 

모레 해설을 위해 다섯 권의 책을 빌려왔는데 첫 권으로 고른 '책사 한명회'가 재미 있어 필요한 부분만 읽으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우선 한명회가 예종의 장인, 성종의 장인이 된 사연부터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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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1 1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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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06: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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