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정궤(明窓淨机)는 밝은 빛이 들어오는 방의 정갈한 서안(書案)을 말한다.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なつめ そうせき: 夏目漱石>가 좋아했다고 한다. 가끔 단 한 권의 책도 없이 텅텅 비어 정결한 방, 절간 같은 방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의 글이 생각난다.(‘바람을 담는 집수록 책이 없는 방, 절간 같은 방’ 186 페이지)

 

밝은 빛이 들어오는 방의 정갈한 서안을 의미하는 명창정궤에서 정갈하다는 의미는 김화영 교수가 말한 것처럼 책이 없는 책상이라기보다 서너 권의 책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화영 교수는 어쩌다가 묵어가는 시골 여관방, 주전자와 물그릇과 재떨이가 전부인 금욕적인 방, 그리하여 마침내 책이 그리움이 되는 오후를 그렸지만 나는 서너 권의 책이 있는 방을 만든다면 그 책은 어떤 책들이 될까? 궁리하지 않을 수 없다.

 

아아, 상당히 어려운 과제다. 이런 구상(構想)은 모든 음악이 없어져도 바흐의 평균율만 있으면 복원이 가능하다는 말에 영감을 받은 결과다. 책의 물질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나는 아무래도 알베르또 망구엘 류의 사람이리라.

 

보르헤스 이야기를 해야겠다. 시각 장애인이 된 채 국립 아르헨티나 도서관장이 된 보르헤스는 그 사건을 자축하기 위해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하느님의 기막힌 아이러니를 시로 썼다.(알베르또 망구엘 지음 밤의 도서관’ 283 페이지)

 

그런 보르헤스가 책은 읽는 순간 속에 존재하고, 그 후에는 읽은 페이지에 대한 기억으로서 존재하며, 책이라는 구체적 형태는 얼마든지 처분 가능하다고 생각한 작가인 반면 제자 망구엘은 언어의 구체적 물질성, 책의 단단한 현존, 그 형체, 크기, 질감을 원하는 사람이다.(2018827 교수신문 수록 김정규 시인 글 서재를 해체한다는 것에 대하여참고)

 

나는 사실 펴볼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는 책들조차 과감히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금욕적인 방은 상상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러니 깨끗하게 방을 정리하리라 마음 먹을 뿐이니 나는 바벨탑 무의식의 소유자일 수 밖에 없다. 쌓아서 구원에 이르려는 또는 이를 수 있다고 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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