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헤스론은 람을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허무하다 그치?)

어릴 적, 끝없이, 계속되는 동사의 수를 세다 잠든 적이 있다

 

* 소설가 박태원(1909 - 1986)이 형상화한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 구보씨(仇甫氏)는 정오쯤 집을 나와 보들레르가 말한 플라뇌르(flaneur; 어슬렁거리는 도시의 산책자)처럼 종로, 동대문, 정동(貞洞) 등을 걸으며 상념에 빠지는 인물이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이 소설에 삽화를 그린 사람은 하융이란 필명을 쓴 이상(李箱; 1910 - 1937)이었다. 어제 오랜만에 이상(李箱)과 플라뇌르를 떠올리며 독립문에서 경교장, 광화문, 서촌까지를 걸었다.

 

서촌에서 최근 재개관한 이상 시인의 집을 보았으나 압권은 3.1절 행사를 위해 정부종합청사에 대형 태극기를 설치하는 장면이었다. 워낙 큰지라 몇 파트로 나뉘어 설치된 국기는 설치미술을 연상하게 했다. 하지만 그 감동적인 모습을 뒤로한 채 나를 사유하게 한 것은 최근 프랑스 패션 잡지 보그에 표지 모델로 오른 유관순 열사였다.

 

여성이기에 그런지 유관순 열사는 위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대우를 받고 있어 안타까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동기들 톡방에 대형 태극기 설치 장면과 보그에 오른 유관순 열사 모습을 올렸더니 한 동기가 딸과 함께 홍대 근처의 여성인권 박물관에 다녀왔다는 글을 올렸다.

 

일제에 전쟁 성노예로 끌려간 우리 여성들이 처했던 참담함을 끝까지 지켜볼 수 없었다는 그에게 나는 호주 시드니의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파리의 쇼아(홀로코스트의 히브리어) 박물관, 라벤스브뤼크 여성 수용소 기념관 등이 소개된 송한나의 '뮤지엄 스토리'란 책을 추천했다.

 

그리고 최영미의 '어떤 족보'라는 시를 생각했다. 남자에서 남자로 이어지는 족보의 폭력에 이의를 제기한 시이다. 김승희 시인은 Mother(어머니)란 단어가 Matter(물질)이란 단어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사실에 유의하라며 서구 신화와 종교가 어머니 정복 - 어머니 부정 - 어머니 승화라는 세 단계의 투쟁을 통해 여성 억압을 제조해왔다고 지적한 뤼터를 소개했다.

 

세포 발전소라 불리는 미토콘드리아는 어머니에게서 아들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 경우 다음 세대로 물려줄 수 없고 딸에게 이어진 것은 무수히 다음 딸에게 이어지기에 족보는 생물학적으로 여성 중심으로 편제되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설득력 있는 말이다. 물론 현실은 남성 중심으로 족보가 편제되는데 이는 가부장제 또는 남성중심주의로 인한 것이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읽어야 할 시가 최영미 시인의 '어떤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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