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
일로나 예르거 지음, 오지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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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라는 부제의 일로나 예르거(Ilona Jerger)의 책 두 사람을 읽었다. 동기(動機)가 된 것은 정조(正租)와 정약용의 관계를,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적 상상을 더해 논픽션 형식으로 쓰려는 생각이다. 사실 두 사람이 소설(형식의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소설 형식이어서 잘못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저녁 식사라는 말을 접하고 10년 전 읽은 장대익 교수의 다윈의 식탁을 떠올렸다. ‘다윈의 식탁은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논쟁 형식의 책이다. 나는 다윈에 대해서는 물론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최근 흐름으로 보건대 나에게 익숙한 것은 마르크스(의 생애). 대영박물관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자본을 쓴 그를 역시 같은 도서관을 자주 찾아 자기만의 방을 쓴 버지니아 울프와 비교하는 글로 연결지었기 때문이다.

 

독일인 마르크스가 영국인 다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았던 것은 망명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존재를 알았다. 다윈을 매우 높이 평가하는 헌사를 적어 다윈에게 보냈을 정도인데 두 사람이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마르크스와 다윈의 관계를 매개한 것은 허구의 인물인 베케트 박사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다윈의 지인이자 마르크스의 사위인 에이블링이 다윈에게 장인을 모시고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청함으로써 성사되었다.

 

베케트 역시 두 사람에게 차례로 상대를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했다. 허구의 인물인 베케트 박사는 다윈과 마르크스의 집을 번갈아 방문하며 각기 이런 저런 병에 시달린 두 사람을 치료해주는 주치의로 설정되었고 에이블링은 실제 마르크스의 사위였지만 그가 마르크스의 사위가 된 것은 마르크스가 사망한 후이다. 따라서 이 설정 역시 소설적 즉 (부분적으로) 허구다.

 

저자는 진화 이론 자체가 아닌 다읜의 내적인 삶에 초점을 맞춘 만큼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이론 구조보다 마르크스 개인 성격이나 국가 없는 망명자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말을 했다. 다만 다윈의 경우는 집안이나 산책로 등의 풍경이 상세하게 묘사된 반면 마르크스의 경우는 베케트와의 짧은 대화가 주되게 다루어졌다.(자료 찾기가 어려운 결과다.)

 

내적인 삶이나 개인 성격 등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베케트가 다윈과, 그리고 마르크스와 나누는 이론적 대화는 꽤 전문적이다. 마르크스와 다윈이 만난 자리에서 오고간 대화도 그렇다. 사실 이 부분은 다윈의 아내 엠마의 문제가 드러난 자리이기도 하다.(엠마는 무신론자인 남편 다윈이 기독교 신앙을 갖도록 설득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저술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본저술의 단서를 삼았지만 다윈을 기회주의자로 보았다. 마르크스는 다윈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관찰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동물과 식물의 세계에 그대로 대입했으며(141 페이지) 공산주의는 진보이며 순진하게 꿈결 같은 자연 상태가 진보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146 페이지)

 

다윈은 자연과학자로서 과학이란 모든 사회적인 분쟁의 외부에서 작동해야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는 말(162 페이지)과 함께 자연에 협력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종이 계속 생겨나는 것은 경쟁의 결과라는 말, 협동을 기본 원칙으로 격상시키려는 사회가 두렵다는 말(163 페이지)을 했다.

 

다윈은 자연의 수많은 법칙 중 몇 가지를 점점 더 이해함으로써 신앙심 깊었던 예전 마음으로 돌아왔다는 말을 한다.(298 페이지) 다윈은 자신을 불가지론자로 규정했다.

 

두 사람은 내 관심사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책이다. 마르크스와 스피노자의 유대인 및 랍비와의 연관성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와 스피노자 모두 유대인이었고 마르크스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랍비 아버지의 자식들이었으나 그런 점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고 누가 가족사를 알려고 하면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스피노자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랍비가 되기를 기대받았지만 범신론을 버리지 않아 파문당했다. 오랜만의 소설이라 말해야 하지만 소설 이상의 책이라는 생각에 그런 표현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소설 형식의 책이어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는 말은 하고 싶다. 재미를 묻는다면 재미라기보다 진실의 감동이 더 크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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