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에서든 주련(柱聯)을 보면 조지훈 시인 특히 그의 시 '낙화(落花)'가 생각난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라는 구절이 있는 시.
우련 붉어라란 구절 때문만은 아니다. 우련하다는 말은 형태가 약간 나타나 보일 정도로 희미한 것을 뜻한다. 어떻든 우련이 주련을 상상하게 하는 면이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한 논자는 '낙화'의 첫 구절인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를 꽃이 지는 것은 물질의 바탕, 운동성, 물질 등을 의미하는 기(氣) 때문이 아니라 우주의 법칙, 원리 등을 의미하는 리(理) 때문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구절로 풀었다.
그렇다면 조지훈 시인은 주리론(主理論)을 체계화한 유학자 퇴계 이황의 후예이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란 구절은 세상이 그런 원리로 되어 있으니 바람을 탓할 것이 못 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물론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란 말을 했다. 사실 바람은 그저 외인(外因)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바람을 탓하랴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기를 놓고 퇴계와 율곡이 드러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퇴계는 혼란한 현실에서 이상(理想)을 지키기 위해 도덕 원리를 강조했고 율곡은 현실을 떠난 이상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돌아보는 것으로 각각 이와 기에 강조점을 둔 두 사람의 철학적 입장을 간접적으로 헤아릴 수 있다.
퇴계는 틈만 나면 임금의 허락을 얻어 현실 정치로부터 물러나 도덕 수양에 힘쓰려 했고, 율곡은 병석에 누워서까지 적극적으로 현실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다. 이 차이는 두 사람의 철학의 차이로부터 기인한 것이다.(김교빈 지음 '한국철학 에세이' 186 페이지)
퇴계는 벼슬에서 물러난 뒤 오랜 기간 교육에 힘썼기에 많은 제자를 두었고(같은 책 172 페이지) 율곡은 죽기 이틀 전 북쪽 국경 지방을 둘러보는 일을 맡아 떠나는 제자 서익을 불러 놓고, 가족들에게 몸을 의지한 채 여섯 조항의 방책을 받아 쓰게 했다.(같은 책 183 페이지)
유가(儒家)들은 항상 출처(出處)를 반복했다. 출은 상황이 좋아 공적 생활로 나아가는 것이고 처란 상황이 나빠 자연에 은둔하는 것이다.('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 262 페이지) 이런 면모는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도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라 인식하는 낙관의 결과다.
조지훈 시인은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라 말하고서는 마지막 연에서는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란 말을 했다. 수미(首尾) 불상응의 시다. 주련은 성리학자들이 스스로 경계하는 글을 써서 거처의 한쪽에 붙여 두고 자신을 바로잡는데 쓴 잠(箴)을 다른 사람들까지 볼 수 있게 건물 기둥에 쓴 글이다.
퇴계가 선조에게 올린 성학십도 중 제9 경재잠도(敬齋箴圖), 제10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는 주자(朱子)와 퇴계의 잠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다.(자현 스님 지음 '사찰의 비밀' 156, 157 페이지)
조지훈 시인은 어떤 존재인가? 그는 '낙화'에서 수미 불상응의 정서를 보였지만 충분히 유가적이다. 어느 알 수 없는 절에서 그가 쓴 주련 글씨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주련을 보면 조지훈 시인을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