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 내 붓을 들어 한의 세월을 적는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4
혜경궁 홍씨 지음, 이선형 옮김 / 서해문집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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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많은 한중록(閑中錄)을 읽고 리뷰를 쓰게 되었다. 이덕일 저자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고 궁금증에 읽게 된 책이다. 잘 알려졌듯 '한중록'의 저자는 혜경궁 홍씨다. 뜻 밖에도 '한중록'의 한은 한()이 아니라 한()이다. 왜 이런 단어를 썼을까? 첨예한 이해관계의 현장에서 물러나 쓴 한가한 즉 여유롭게 관조하듯 쓴 객관적인 글임을 강조하기 위해 쓴 것일까?

 

기록에 의하면 '한중록'은 본집에 혜경궁 홍씨의 필적이 남은 것이 없으니 잘 간수하여 대대로 전할 글을 써달라는 조카 홍수영(洪守榮; 혜경궁의 큰 오빠 홍낙인의 큰 아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쓴 책이다.

 

본집에 혜경궁의 필적이 없는 것은 혜경궁 홍씨가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세자빈이 되어 입궐했기에 친정 부모를 그리워해 편지를 자주 주고받던 차에 친정 아버지 홍봉한(洪鳳漢)이 외간 편지가 궁 안에 돌아다니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라며 자신들(아버지 홍봉한과 어머니 한산 이씨)은 안부만을 묻는 편지를 보냈고 딸이 보낸 편지는 세초(洗草)했기 때문이다.

 

혜경궁 호씨의 시호는 헌경혜빈(獻敬惠嬪)이고 혜경궁은 정조가 내린 궁호(宮號)이다. 이태준은 "내 좁은 눈으로는"이란 단서를 달아 '한중록''인현왕후전'과 함께 조선 산문의 고전이라 평했다.(창비 출간 '문장강화' 328 페이지)

 

이태준은 "뜻을 전하는 것 외에 어디 무엇이 있는가?"란 말을 하며 산문은 오직 뜻(내용)에 충실해야 하는데 낭독하기 좋아야 좋은 글이라 여기는 것 때문에 산문 발달이 더디게 된 것이라는 말을 했다.(창비 출간 '문장강화' 103-105 페이지) 나는 이 말을 내용의 충실성은 안중에 없고 세련되게 쓰려는 사람들이 참고해야 할 말이라 생각한다.

 

각설하고 '한중록'은 전 여섯 권으로 된 책으로 기록 연대도 다르고 내용도 차별적이다. 가령 1, 4권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에, 사도세자의 비극인 임오화변을 기록한 2, 3권은 71세에, 5권은 67세에, 1-5권을 간추려 정리한 6권은 68세에 쓴 글이다. 핵심인 2, 3권 외의 나머지 권은 사소하거나 기록적 가치가 없는 것들까지 장황하게 기록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뭐니 뭐니 해도 '한중록'은 기록자인 혜경궁 홍씨가 주(). 영조, 사도세자, 정조, 인원왕후(숙종의 두 번째 계비), 정성왕후(영조의 정비), 정순왕후(영조의 계비), 순조, 홍봉한, 홍인한, 홍국영, 효장세자, 화순, 화평, 화협, 사도세자의 정적이었던 화완(옹주), 선희궁(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 등은 보조 인물들이다.

 

'한중록'은 누가 뭐래도 혜경궁 홍씨가 자신과 자신의 집안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말하기 위해 쓴 글이고 조카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글이다. 그래서 그런지 당쟁 또는 당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사건을 영조와 사도세자의 개인적 갈등으로 환원시켜 설명했다는 아쉬움을 준다.

 

이태준이 우리 산문의 고전이라 평한 만큼 '한중록'은 꼼꼼하고 세밀하다. 인상적인 것은 언급된 많은 사람들이 부모, 임금 등을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깊으며 사도세자나 정조를 통해 알 수 있듯 어린 나이에 철이 들고 조숙했다는 점 등이다.

 

영조는 화평과 화완을 편애하고 사도세자와 화협, 화순 옹주는 극도로 미워하는 등 편벽된 성격, 성향을 보였다. 혜경궁 홍씨는 영조가 어린 사도세자를 경종을 모셨던 궁녀들로 하여금 모시게 했다는 말을 한다. 궁녀들은 명확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인물들이다. 경종의 궁녀들은 소론 성향이었다.

 

영조는 노론의 도움으로 왕이 되었다. 탕평책의 일환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도세자를 소론 성향의 궁녀들로 하여금 돌보게 한 것은 영조의 실수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이중 구속(double bund) 상태에 빠지게 했고 날씨가 나쁜 것도 사도세자 탓이라 말하기까지 했다.

 

이중 구속이란 상대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는 악습이다. 영조가 쓸데 없이 양위 소동을 벌여 사람들 특히 사도세자를 힘들게 했거니와 사도세자가 조정 신하의 상서(上書)를 보고하면 그만한 일을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나를 번거롭게 하냐고 했고, 보고하지 않으면 그런 일을 내게 묻지 않고 혼자 결정했느냐고 꾸중했다.

 

영조는 사도세자에 대해 조용히 타일러도 될 일을 신하들 앞에서 큰 소리로 꾸짖고 부모를 모르는 것이 자식을 알겠느냐며 물러가라고 하는 등 함부로 대했다. 영조가 인원왕후에게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한다고 하자 귀가 어두운 인원왕후가 그러라고 하니 영문도 모르는 사도세자는 얼음 위에서 석고대죄를 했고 머리를 조아려 피가 나기까지 했다.

 

영조는 신임을 잃은 사도세자의 말을 듣지 않아 사도세자로 하여금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아뢰도록 했고 실수를 고의로 간주하기도 했다. 혜경궁 홍씨는 남편 사도세자를 정신 이상자라 썼다. 영조의 편벽된 성격이 사도세자의 정신 이상을 초래했다고 썼다. 물론 중간중간 정신 이상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과 말을 사도세자가 했다고 썼다.

 

혜경궁 홍씨는 아버지와 영조 사이를 옛 사적(史籍)에도 없는 아주 드문 최고의 관계, 인연으로 그렸다. 혜경궁 홍씨는 임오화변을 뼈에 사무친 지극한 원한(296 페이지)이라 표현했지만 뒤주에 갇혀 고통 속에 죽어간 사도세자에 대한 감정은 표출하지 않고 간략하게 사건 위주로 기록했을 뿐이다.

 

영조실록에는 뒤주란 말이 나오지 않고 안에다 엄중히 가두었다고만 나와 있고 한중록에 뒤주라고 나오고 정조실록에는 한 물건이라고 나온다.(윤정란 지음 '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406 페이지) 혜경궁 홍씨는 영조에게 자신과 정조가 살아 있는 것은 마마의 은혜 덕분이라 아뢴 한편(217 페이지) 영조가 아들한테도 그랬는데 손자에게는 또 어떠실지 누가 알겠는가란 말을 했다.(296 페이지)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가 아들의 병이 망극하여 성궁과 종사(宗社)가 위태위태한 것이 경각에 달렸으니 영조가 애통망극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죽인 것이라고 했다고 썼다. 선희궁은 영조에게 성궁을 보호하고 세손(정조)을 건져 종사를 평안히 하는 것이 옳으니 대처분을 하고 다만 은혜를 끼쳐 세손 모자는 평안케 할 것을 간청했다.(196 페이지)

 

후에 선희궁은 자신이 아들에게 한 일은 종사와 임금을 위한 일이었으나 모질고 흉한 일, 아들에게 차마 못할 일이라 말했다.(218 페이지)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가 (영조가) 자신을 폐하고 세손을 효장세자의 양자로 삼으시면 어찌하겠나? 세손이 있는 이상 자신이 없다고 한들 크게 상관을 하시겠는가?란 말을 했다고 전하며 사도세자가 미래의 일을 능히 헤아린 것이라 말한다.(182, 183 페이지)

 

혜경궁 홍씨는 작은 아버지 홍인한이 세손은 나랏 일과 이조판서와 병조판서, 노론과 소론을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해 정조가 1804년에 홍인한의 일도 풀 것이라고 했지만 불의에 승하한 탓에 안타깝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했음을 알 수 있다.

 

사도세자는 경종을 모셨던 궁녀들로부터 경종이 노론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말을 듣고 영조와 노론에 반감을 갖게 되었다. 노론은 소론 중심의 정치를 하는 사도세자를 제거할 수 없자 동궁 하인 나경언을 시켜 세자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거짓 고변을 하게 했다. 영조는 깜짝 놀라 홍봉한으로 하여금 조사를 하도록 지시했고 홍봉한 역시 노론이기에 사도세자가 반역을 꾀한다는 말이 사실인 것으로 얼버무려 보고했다.

 

물론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 곳곳에서 아버지를 다정다감하고 공정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홍봉한의 말만 듣고 더 이상의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명한 영조의 잘못은 크다. 이상 성격 이전에 그렇게 중대한 사안을 서둘러 결론낸 것이 잘못인 것이다.

 

홍봉한은 노론 세력으로서 계속 사도세자를 무고했다.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쓴 시점은 사도세자와 영조는 물론 정조까지 죽은 후이다. 사도세자 사건의 생생한 목격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이란 말이 수비가 하나도 없는 오픈 찬스를 의미하는 것에 비유하고 싶다. 혜경궁 홍씨는 주상(정조)이 사도세자의 자손으로 그때 일을 망연히 모르는 것이 망극하고 시비를 분별하지 못함이 민망하여 마지못해 기록하게 된 것(222 페이지)이라 썼다.

 

그리고 임오화변에 대해 누가 나만큼 알겠냐(219 페이지)고 썼다. 누가 나만큼 알겠냐는 말은 논란을 방증하는 말이고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이다. 슬프고 안타깝고 아프다. ‘한중록은 관점이 다른 글이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거나 모른 척 한 글이다. 역사적 사건을 구구절절하게 기록한 책이란 점에서 고전이라 할 수 있겠지만 문학성이나 진실의 관점에서는 고전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지는 않는 책이 한중록이다.

 

혜경궁 홍씨가 아들을 간신히 길러 구오(九五)에 오르시게 했다며 어미의 마음으로 귀하고 기쁘게 여긴다는 말에 대해 편저자가 한 설명을 이야기하고 싶다. 구오를 단지 임금의 자리를 뜻하는 주역의 말이라고 설명한 것은 아쉽다. 주역 64괘의 첫 괘인 중천건(重天乾)의 다섯번째 양효인 구오(중천건괘는 여섯 효가 모두 양효이다.)의 효사(爻辭)는 하늘에 용이 나는 것 즉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여섯 번째(상구; 上九) 효사는 항룡유회(亢龍有悔)로 높이 나는 용은 후회할 것이란 의미이다. 구오라고만 설명한 것은 아쉽다. 별것 아니지만 저자가 주역 괘의 효사를 이야기했으니 자세한 배경 설명을 해야 했다. 끝으로 혜경궁 홍씨의 책은 한중록(恨中錄)이라 해도 좋을 책이란 말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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