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노래 - 정조의 역사 읽기, 정조의 속살 읽기, 정조의 모두 읽기
박상하 지음 / 생각출판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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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바르게 이끌었다는 뜻의 묘호를 받은 임금. 개혁 군주이자 학자 군주. 독살되었다는 논란의 주인공. 바로 조선 22대 임금 정조(正租)를 이르는 말이다. 박상하의 장편 '왕의 노래'는 화성(華城) 행차(行次; 을묘원행)에서부터 시작해 오회연교(五晦筵敎)를 거쳐 운명(殞命)에 이른 정조의 마지막 5년을 그린 장편 소설이다.

 

화성 행차는 육의전과 결탁(정경유착)하고 왕권 위에 올라서려는 등 온갖 폐단과 전횡을 일삼은 노론 지배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감행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소설은 행차 이레 전부터 시작해 하루 단위로 벌어진 숨가쁜 대립 구도를 그린 뒤 에필로그에서 정조가 부르지 못한 왕의 노래를 지금 듣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왕의 노래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농토가 없는 백성이 마음껏 장사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광화문 앞 육조 마당에 나아가 백성들과 함께 넘치는 기쁨으로 부르겠다는 노래이다. 노론과 결탁한 시전 상인 외의 가난한 백성들의 시장인 난전을 금한다는 금난전권이 상징하듯 정조 재위 시절 경제권력은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정조가 처음 왕의 노래에 대해 들은 것은 그의 나이 열한 살 때로 영조를 대신해 정치(대리청정)를 하던 아버지와 함께 민심을 헤아리기 위한 암행을 나가서였다. 정조는 암행 길서 나서 종루대로에서 아버지와 함께 하며 왕의 노래를 부를 것이라는 말을 들었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린다.

 

왕의 노래의 장점 중 하나는 회상(回想)에 있다. 정조는 화성 행차를 두고 빚어진 군주와 신하간의 논쟁으로 인한 안타까움을 어루만지고 달래려고 연 궁중 잔치에서 취기가 올라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창경궁 휘령전에서 비통한 죽음을 당한 사건(임오화변; 1762)을 떠올린다.

 

소설에서 서른 셋의 정약용은 정 3품 병조참지로, 42세의 홍병신은 암행어사로, 53세의 백동수는 정조의 호위무사로, 역시 53세의 이가환은 공조판서로, 75세의 채제공은 우의정으로, 77세의 홍낙성은 영의정으로 나온다. 이들이 정조의 측근들이다. 반면 병조판서 심환지, 정약용의 라이벌인 이조참지 김진탁, 정순왕후 등은 정조의 정적들이다.

 

특히 정순왕후는 정조의 미스테리한 죽음에 개입했을 것으로 믿어지는, 영조의 계비이다. 정조 사후 열한 살에 즉위한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며 나라를 노론이라는 일당 체제에서 안동 김씨 일가의 체제로 만든 세도정치의 원흉이다.

 

소설의 재미는 정조의 화성 행차를 방해하기 위해 노론이 벌인 상상할 수 없는 비열한 작전을 사전 차단 또는 무산시키려는 백탑결사 등 정조 측근들의 활약에서 찾을 수 있다.

 

소설 초반부에서 정약용은 이론과 실천 중 어느 것이 어려운가, 라는 정조의 물음에 실천이라 답한다. 정조는 이론이라 말한다. 한편 무엇이 문제냐는 물음에 정약용은 백성의 가난이라 답하고 정조는 공정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정조의 성격으로 환원할 수 없는 문제가 다음 문장에 녹아 있다. "왕의 하루는 분주하기만 했다. 왕조의 왕은 이념적으로 태양을 상징하기 때문에 태양이 뜨기 전에 벌써 침소에서 일어나야 했다....하루 동안에 왕이 처리하는 업무를 흔히 만기라 일컬었다.... 왕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 채 조용히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란 거의 없었다. 다른 왕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었다."(144, 145 페이지)

 

물론 정조는 개혁과 애민의 임금이었고 어릴 적부터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는 등 아버지를 죽인 노론과 대치해야 했던 남다른 사정이 있었던 군주였다. 돋보이는 부분은 화성 행차에 참여한 사람들을 세밀하게 묘사한 부분이다.

 

을묘년 화성 행차(1795) 이후 5년만인 1800년 정조는 유명을 달리 한다. 정치 원칙은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말로 노론에 칼날을 정면으로 겨눌 것임을 선언한 오회연교(五晦筵敎: 정조 245월 그믐날에 정조가 경연자리에서 내린 하교) 직후의 일이다.

 

'왕의 노래'는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는 작가의 의지를 스릴과 탄식의 이중주로 만든 작품이다. 정조에 대한 논란 부분은 소설이 다룰 부분이 아니었으리라. 오랜만에 역사 소설에 진지하게 몰입하게 해준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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