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界)에 대해서든 비화(祕話)를 관심 들여 알고자 하지 않는다. 티브이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막장성이 싫기 때문이다. 정확히 19년 전 나온 한 철학책의 후기에서 모(某) 대학의 철학과에서 벌어진 교수들간의 밥그릇 싸움 같은 볼썽 사나운 일을 접한 이래 더욱 그랬다.(물론 이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는 식별 가능하다.)
비화라고 해서 무조건 시끄럽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아님을 지금 읽고 있는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를 통해 새삼 느낀다. 기형도 시인의 타계 29주년에 즈음해 나온 이 소설은 기형도의 대학 시절 절친이었던 김태연의 장편이다. 소설이 전하는 내용이 얼마나 알려졌었는지 모르지만 작가에 의하면 기형도 시인은 노래, 그림 등에서 압도적 재능을 보였을 뿐 아니라 성격까지 좋았던 데다가 외모까지 수려했다.
기형도는 서울대학교에 갈 충분한 실력이 있었음에도 윤동주를 좋아해 연대를 택했다. 물론 과는 정법(政法)과였다. 흥미로운 것은 기형도가 윤동주를 좋아해 연대에 진학했지만 “밥 굶을까 싶어” 국문학이나 철학이 아닌 정법학과를 택했듯 주인공 허승구(작가 김태연의 분신)도 수학자 장기원(1903 – 1966)을 좋아해 연대에 진학했지만 “밥 굶을까 싶어” 수학과가 아닌 공학을 전공했다는 점이다.
허승구가 연대를 택한 이유는 더 있다. 그 중 하나는 일단 공대에 들어가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두루 공부해 목표를 정한 후 궁극적으로 모두를 아우르는 멋진 장편 소설을 쓰고 죽자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소설에 의하면 허승구가 연대를 택한 것은 그 학교에서 공부해야 특별히 소설 창작에 유리해서가 아니라 공대 건물과 인문대나 사회대 건물이 한 울타리에 있기 때문으로 서울대는 뛰지 않는 한 10분안에 공대에서 인문대나 사회대에 갈 수 없고 고려대는 아예 인문사회대와 이공대가 한 울타리 안에 있지 않아서 10분으로는 어림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읽는 소설이 흥미롭게 읽혀 다행이다. 관례와 다르게 소설을 읽는 것은 10월 13일 기형도 문학관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전시 자료가 많지 않아 문학관 해설사의 해설이라고 해도 20분을 넘기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이런 점이 의지를 다지게 한다. 시를 분석하며 외우기도 하고 일화(逸話)를 의미 있게 연결해 30분 이상 해설을 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