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사 안국동 사옥에서 열린 한자경 교수의 신간 마음은 이미 마음을 알고 있다: 공적영지(空寂靈知)’ 강의를 들은 지 50여일이 지났다. 여러 내용들 중 내게도 시사점이 되는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교수님은 가장 앞 자리에 앉아 있었던 내게 가까이 오시더니 얇은 책을 내 눈에 완전히 밀착시키셨다가 거두어 가셨다.

 

누구든 대상(이 경우는 얇은 책)이 눈과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 대상을 볼 수 있다. 그 책이 눈에서 너무 멀리 있을 때는 물론 눈과 밀착되어도 분별은 불가능하다.

 

교수님은 그렇게 당신 앞으로 책을 거두어 가시면서 자신이 눈에서 대상을 치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물으셨다. 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는 답변은 1차원적이다. 그러니 그 답변을 학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서라고 다른 말로 사물의 끝을 보기 위해서라고 말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서울을 제대로 알기 위해 서울의 동서남북 경계를 두루 탐험한 한 문헌학자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거듭 방만(放漫)해지기만 하는 공부는 지양(止揚)하고 적정 선에서 마름질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도 있다.

 

마름질이란 옷감이나 재목 따위를 치수에 맞게 재거나 자르는 일을 말한다. 마름질이 안 된 옷감은 입을 수 없고 눈에 밀착된 대상 즉 경계가 지어지지 않은 대상은 가시의 사물이 아니고 적정 선에서 마름질 되지 않고 방만하기만 한 공부는 진정한 공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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