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란 말을 페북에서 찾으니 만 송이 꽃은 아니고 백 송이 꽃이 피었다고 할 수는 있겠다 싶다.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는 주장은 다행히(?) 보이지 않고 마음 먹기에 따라 세상이나 현실이 달라진다는 주장, 마음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는 주장 등이 보인다.
사람마다 가진 성향과 이해도에 따라 그 이론에 대한 정의가 미세한 차이들로 나타나고 있다고 해야겠다.
이와 관련해 몇 해 전 읽은 서광 스님의 ‘치유하는 유식 읽기‘란 책을 펴보았다.
책에는 유식(唯識) 불교는 일체유심조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글, 유식무경(唯識無境)이란 말은 오직 자신의 그릇된 생각으로 파악한 그런 세계(경지)는 없다는 의미라는 말, 오직 (인)식만 있다는 말로 받아들이기 쉬운 유식이란 말은 결국 서로 다른 주관과 견해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로 지적해야 할 것은 인식이라는 말 등이 있다.
저자는 파도가 치려면 바닷물이 있어야 하고 바람도 불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이 책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 읽은 ‘내 안의 우주에 이르는 길‘에서 저자(곽내혁)는 아픈 사람에게 마음을 바로 쓰라는 말은 옥상옥(屋上屋)이란 말을 했다.
마음은 이미 현실 또는 객관세계가 반영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마음이 잘못 되어 몸이 아픈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은 해명이 필요하다. 마음이 몸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관건은 현실과 마음 가운데 어느 것 하나만 두드러지거나 절대화되지 않는 것이리라. 불교도도 아니고 그 이론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든 상관 없지만 굳이 말하는 것은 나이가 들면 일체유심조가 아닌 유물론을 생각해야 한다는 댓글을 읽고 조화와 여실지견(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댓글을 단 그는 일체유심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