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숙(1918 - 1993) 작가 자료를 정리하다가 작가가 스물 일곱에 교통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아들 용기(1944- 1970)씨를 애통해 하며 쓴 소설 ‘우리 사이 모든 것이‘를 읽었다.

의학도였던 용기씨는 바쁜 시간 틈틈이 최선을 다해 첼로도 연주하며 교향악단과 협연을 하기도 한 분이다.

그는 보케리니의 곡을 자주 연주했고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헨델의 수상 음악도 연주하곤 했다고 한다.

작가는 그래서 보케리니 곡도, 바흐 무반주 모음곡도 아프고 용기씨가 형에게 원거리 전화를 걸어 수화기에 대고 연주했다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는 더욱 아프다고 말한다.

작가는 시인 폴 발레리의 ‘풍부한 부재‘를 이즈음처럼 절감한 때는 없었다고 말한다.

˝너는 가고 없지만 너의 추억은 충만해 있˝고 ˝너는 무가 아니고 부재˝한다는 의미이다.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죽은 아들을 살리는 약을 찾아다닌 끝에 그것이 허망한 꿈임을 알아차린 야윈 고타미의 깨달음이 극적이고 은유적이라면 한무숙 작가의 것은 사색적이고 철학적이다.

˝너 까닭에 이 괴로움, 이 아픔을 갖지만 너는 태어나야 했고 많은 추억을 남겨주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슬픔과 아픔도 남겨야 했다.

그것은 섭리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도 신의 섭리에 간섭해서는 안되는 것이다.˝(‘우리 사이 모든 것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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