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의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 가옥을 찾은 것은 지난 6월 15일. 당시 나는 춘곡의 주선으로 전형필 선생이 위창 오세창 선생을 만난 대목을 떠올렸다.

춘곡에게 전형필은 제자였는데 내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위창 오세창 선생을 만난 대목을 떠올렸다고 하지 않고 전형필 선생이 위창 오세창 선생을 만난 대목을 떠올렸다고 말한 것은 그때까지 전형필 선생에게 옥정연재(玉井硏齋)라는 재호(齋號: 당호堂號의 다른 말)는 있었지만 아호(雅號)는 없었기에 그렇다.(옥정연재는 우물에서 퍼올린 구슬 같은 맑은 물로 먹을 갈아서 글씨를 쓰는 집이라는 의미.)

추사의 제자이자 역관(譯官: 역관은 통역관을 말하는데 나는 왜 자꾸 역관易官을 떠올리는지...)이었던 오경석의 아들인 오세창 선생은 두루마기를 입은 젊은 전형필을 보고 깊은 산 속에서 흐르는 물<간(澗)>과 같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부친 오경석의 스승인 추사가 그의 다른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에게 세한도(歲寒圖)를 주며 인용한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는 뜻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라는 문구에 나오는 송(松)을 넣어 간송이라는 아호를 전형필 선생에게 지어 주었다.

선불교에서 법통을 계승하는 것을 연상하게 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당시 오세창 선생이 전형필 선생에게 아호를 지어준 것은 선생이 전형필 선생으로부터 부친인 오경석의 탁본을 선물받았기 때문이다.(오경석이 인장을 해 중국 금석학자들에게 보낸 탁본을 전형필 선생이 입수해 선물한 것.)

내일 전형필 가옥을 간다. 단아하고 소박한 집을 보며 간송 선생의 인품과 헌신적 노력을 되새길 것이다.(폭염이 누그러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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