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를 실제 나이보다 열 살 정도 젊게 평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나는 그런 사실을 좋아하기보다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경우 건강도 좋은가, 하는 궁금증을 갖는다.
젊게 보이는 사람들이 건강도 좋다고 하지만 예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내가 그 예외의 한 사람이다.
염색을 잘 하지 않는 내가 할 필요를 느끼는 것은 다음 주 월요일 듣기로 한 강의가 책쓰기 강의이기 때문이다.
책쓰기는 글쓰기와 다르다는 또는 책쓰기는 글쓰기가 아니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다음 주 월요일 강의에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
달리 말해 어떻게 나만의 문제의식을 갖고 그에 맞춰 자료를 수집하며 목차는 어떻게 구성하며 긴 호흡으로 글을 쓰는지 등을 배우는 시간이 될 것이다.
어떻든 강사나 다른 수강자들이 나를 보고 이제껏 책 한 권 쓰지 못하고 뭐 했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이 위축이 된다.
사실 책쓰기 강의를 듣는 것처럼 자신의 이력을 의식하게 하는 것 즉 나이 들어 하기 어려운 것이 점을 보거나 사주를 보는 것이다.
불혹이 없다고 하지만 굳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삶의 길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에게 삶의 길을 묻거나 의뢰하는 것 자체가 불혹에 이르지 못한 또는 천명을 알지 못함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린 아이들에게도 물을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지만 그렇더라도 제 힘으로 충분히 애쓴 후에 하는 것이 관건이다.
내 나이와 같은 때에 또는 한 살 많은 나이에 등단한 시인이나 70세가 넘어 첫 장편 소설을 쓴 분, 그리고 유명 교수이지만 내 나이보다 한 살 많은 나이에 첫 책을 쓴 분 등을 보며 희망을 갖는다.
물론 나는 그 분들이 완성도 높은 시/ 장편 소설/ 책 등을 쓰기 위해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이 내 나이까지 결과를 내지 못한 표면만 보고 나와 그 분들이 걸은 삶의 과정까지 같거나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각자 길이 다르고 소명이 다르고 몫이 다르다고 생각할 뿐이다.(내 영원한 문제 거리인 위장이 요즘 주목할 만하게 좋아져 이런 글이라도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