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과 물리학을 공부한 존 파웰은 정확한 주파수로 작은 노력을 반복해 커다란 효과를 얻는 것이라는 말로 공명(共鳴)을 정의했다. 그네를 예로 들어 공명을 설명하는 파웰에 의하면 그네에 올라탄 아이를 뒤에서 밀 때 타이밍만 정확하게 잘 맞추면 약간의 힘만 주어도 그네를 아주 높이 밀어 올릴 수 있는데 이는 그네가 나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시점에 밀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네가 흔들리는 자연스러운 리듬에 맞게 힘을 가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 92 페이지)

 

김금희 작가의 장편 경애의 마음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의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허수경 시인의 바다가란 아름답고도 슬픈 시가 있다. 이 시를 내 나름으로 정리하면 이런 이야기가 된다. 제게 다가온 깊은 바다를 가득 잡으려 했지만 손이 없고, 손이 없기에 잡지 못하고 울려고 했지만 눈이 없고, 눈이 없기에 안기지 못하고 서성이다 돌아서는 바다를 보고 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혀가 없고, 결국 글썽이고 싶고 검게 반짝이고 싶었지만 손이, 눈이, 혀가 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우리는 멀어지려는 그네를 때맞춰 밀어낼 수 있다. 자신의 그네를 스스로 높게 올린 뒤 시간이 되면 서서히 내려올 수 있다. 허수경 시인의 시처럼 돌아서는 누군가를 잡지도 못할 수도 있고 가지 말라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음악학자 서우석 교수는 혼자 음악을 듣는 것이 소통이 끊어진 혼자만의 일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시작부터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며 그 이야기에 비춘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라는 말을 했다.(‘물결 높던 날들의 연가’ 22 페이지)

 

각자의 그네를 홀로 밀어 올렸다가 시간이 되면 내려오는 경애의 마음랑의 이야기도 결국 타자(他者)의 이야기에 비춘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아닐지? 영문학자 김종갑 교수는 고통과 기쁨, 사랑과 미움, 질투와 칭찬, 공포 등 모든 것이 해석의 결과라는 말을 했다.(‘감정 있습니까?’ 16 페이지) 원래 그런 것은 없다는 의미이다.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고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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