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힘, 그 역사를 읽다 - 동양과 서양을 만들어온
김월회.안재원 지음 / 현암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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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典)은 익히 알고 있지만 제대로 읽은 바는 별로 없는 책이다. 읽어야 한다는 또는 알아야 한다는 당위적 차원에서 접근하지만 읽어내기도 쉽지 않고 현재적 의미를 찾기도 어려워 지지부진하게 되기 쉽다.

 

김월회, 안재원 교수의 고전의 힘, 그 역사를 읽다는 고전 해설서가 아닌 동서양 고전들이 걸어온 길과 역사적 배경을 밝힌 책이다. 한 권의 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고전이 되었고 어떻게 생성, 변화했는지, 그 책들로 인해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등을 조명한 책이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 원래 그런 것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전도 생성, 변화를 겪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 가능하다. 즉 고전에도 역사가 있는 것이다. 책은 두 파트로 나뉜다. 1부 동양편, 2부 서양편이다.

 

당연히 개별 고전을 해설한 책이 아니기에 세부 제목들이 구체적이다. 가령 삶터의 벗으로서의 고전, 모난 책의 굴곡진 운명 박해 받은 책들의 운명, 인문적 시민사회와 고전(이상 동양편), 고전의 탄생, 나는 누구인가, 책들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왜 고전인가?(이상 서양편) 등이다.

 

경전(經典)의 경()이란 단어는 원래 날줄을 의미했다. 베를 짤 때 기준이 되는 세로로 설치된 줄을 의미했던 것이다. 경은 이 밖에 경로를 의미하기도 한다. 지침이 되는 길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1부 필자인 김월회 교수는 경이란 글자가 처음 생길 때부터 섬김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한다.(15 페이지) 이 사실만 보더라도 모든 것에는 역사(기원)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국 시대 사람들은 훗날 유교 경전이 되는 서적들만 경이라고 본 것이 아니라 다른 학파의 책들도 경이라고 불렀다. 김월회 교수는 경이란 글자가 새겨진 죽간이나 목간을 끈으로 엮은 물건 즉 서적 일반을 가리켰을 수 있다는 말을 한다.(16 페이지)

 

경전이 섬김의 대상이 되었을 때 내 삶이 육경(六經)의 주석(註釋)이라는 극단의 생각까지 등장했다. 이를 종경(宗經)이라 한다. 흥미롭게도 공자는 경전을 종주(宗主)로 받들어 섬겨야 할 대상으로 설정한 적이 없었고 유어예(遊於禮)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경전을 노닒의 대상으로 삼았다.(23 페이지)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 유희 정신은 이문회우(以文會友) 즉 고전에서 한가로이 노닐면서 삶의 벗이 되는 고전의 의미로 수렴되는 말이다.(25 페이지)

 

양명학자들은 경전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39 페이지) 그들에게 마음은 그저 갖은 감정과 욕망으로 가득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천리(天理)가 깃들어 있는 것 즉 문자로 된 경전보다 더 순전한 경전이었다.(38 페이지)

 

고전 해석은 곧 권력이었다. ()을 건국한 고조 유방(劉邦)은 유맹(流氓) 즉 깡패 출신이었다. 그런 그는 입만 열면 시경’, ‘서경등을 운운하던 육가(陸賈)에게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은 자신에게 어찌 시경’, ‘서경을 받들라고 하냐며 힐난했다. 이에 육가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란 말을 했다.(54 페이지)

 

주자학(朱子學) 역시 사학(邪學) 또는 위학(僞學)으로 규정되기도 했다. 주희가 새로운 경전 체계를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성리학은 원나라 시기에 이르러 제국 최고의 통치 이념이 되었다.(65 페이지)

 

조선과 중국의 차이도 눈여겨 볼 만하다. 조선의 지배 계층은 양명학이란 유가의 새로운 해석을 사농공상의 신분체계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삿된 학문으로 몰고 갔지만 중국은 이념 차원에서는 열려 있는 태도를 취했다. 이는 그 넓은 지역을 오랜 세월 아우르며 제국의 역사를 만드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76 페이지)

 

고전은 이런 중국의 역사를 창출해낸 배후였다. 상극을 융합하고 모순을 품으며 이단을 껴안는 일은 매번 고전의 재해석을 통해 수행되었다.(77 페이지)

 

김월회 교수는 묵자맹자의 굴곡진 운명을 예로 들며 한 번 고전은 영원한 고전이란 등식은 없고 탄생시부터 고전인 텍스트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작정하고 훌륭한 책을 써도 그것이 반드시 고전이 된다는 보장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말을 한다.(89 페이지)

 

고전은 철저하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제반 권력 관계와 이해관계 등에 의해 선택, 결정된다. ‘맹자처럼 군주로부터 미운털이 박혀 배척되다가도 중화(中華) 수호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떠받들여지는 것은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종종 마주 할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었다.(89 페이지)

 

사서(四書)가 오경(五經)을 제치고 유가 경전의 지존이 된 것은 원대에 들어 성리학이 최고 통치 이념으로 채택된 이후의 일이었다.(90 페이지) 김월회 교수는 역사를 오래된 미래라 부르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역사서와 만나는 방식에 미래가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라고.(100 페이지) 역사를 접하는 이유는 과거를 미래에 고스란히 재현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기획하기 위함이다.

왕양명은 그의 문인들이 대체 극 언제 시간을 내어 공부하는지 궁금해 하자 일을 하면서 공부했다<사상마련: 事上磨練>고 답했다.

 

물론 왕양명이 경전 등의 독서를 마냥 도외시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경전 공부는 마음공부의 일환이었다. 그는 경전은 내 마음의 주석(註釋)”이란 말을 했다. 주희(朱熹)는 경전과 치열하게 만나 경전의 주석을 썼고 왕양명은 그를 통해 자신의 삶을 썼다.(125 페이지)

 

김월회 교수는 결론으로 인문은 옵션이 아닌 삶의 기본값이라는 말을 한다. 안재원 교수는 2부 서양편에서 고전 즉 classic이란 말이 처음엔 군사 용어였다는 말을 한다. 해군의 선단(船團)을 조직할 때 배의 규모와 역할에 따라 배들을 배치하는 데 사용하던 개념이었다.(141 페이지) 책의 등급을 매길 때 클래식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키케로의 아카데미카란 책에서이다.

 

물론 이 말은 책의 등급이 아닌 학자들의 등급을 매기던 개념이었다. 책의 등급을 매기던 개념은 Ordo즉 위계란 말이다. 물론 이 말도 원래는 사회적 신분을 구분하던 말이었다.(143 페이지)

 

안재원 교수는 인문학은 원래 슬픈 학문이라는 말을 한다. 태생적으로 그런 것이다.(150 페이지) 안재원 교수에 의하면 인문학은 신학의 시종(侍從) 노릇을 하며 연명했다.

 

르네상스 시기에 잠깐 빛을 발했지만 곧바로 과학 지상주의, 실용 전제주의가 엄습했고 근세 이후 대학 주도권과 지배권을 행사한 학문 영역은 돈이 많이 흘러들어 오는 실용 학문들이었다는 점에서 인문학의 위상은 드러난다.(150 페이지)

 

책에도 운명이 있다.”는 말은 로마의 문법학자 테렌티아누스의 말이다. 독자의 이해 능력에 따라 책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의미의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언제부터인지 독자의 이해 능력에 따라라는 말이 생략된 채 책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말이 되었다.(186 페이지)

 

서양 역사에서 기구함만을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만큼 파란만장한 책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 가운데 논리학과 변증술이 큰 사랑을 받았다.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몰았던 니케아공의회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였다. 칼이나 방패가 아닌 말(logos)이라는 병장기(兵仗器)가 필요해서였다.(189 페이지)

 

이단 전쟁 종료 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은 인기를 잃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학문의 기초 방법으로 말의 도구적 특성을 정리, 편찬한 오르가논은 정신의 새로운 대륙을 여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물론 분석론이 아닌 도구론이 그랬다. 추상 세계를 실제 세계로 세우고 입증하는 작업도 결국 말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190 페이지)

 

안재원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이 조선에도 들어왔다고 말한다.(195 페이지) 원자(atom)란 말은 무에서 유가 나오는 아포리아를 피하기 위해 도출된 개념이다. 원자란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말인데 만일 계속 쪼갤 수 있다면 무()가 도출될 것이고 그러면 무에서 유가 나오는 문제를 해명할 수 없게 된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말은 한 사회 속에서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것 즉 개인이란 개념을 낳는 데 한 몫 했다. 이는 가장 비정치적인 것(과학)이 가장 정치적인 것(사회학적 상상력)이 된 대표적 예이다.(209, 210 페이지)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해는 1439년이다. 덕분에 책들이 대량생산되었고 지식의 대중화가 가능해졌다.(211 페이지) 이는 서양의 새로운 정신과 삶의 방식 즉 민주주의, 산업화와 시장경제, 개인의 발견, 시민 사회 등장의 배경이 되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 사업에서 실패한 것은 출판본에 있는 오류들 때문이었다. 필사본의 경우 한 번 실수에서 하나의 오류만 생기지만 책의 경우 한 번 실수는 찍는 부수 만큼의 실수가 생기기 때문이다.(219 페이지)

 

원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등은 아이들 교육용이 아니었다. 성인용이었다. 플라톤은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의 대표 사례로 일리아스의 제우스 묘사를 들었다. “헤라를 보자마자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침실로 갈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헤라와 땅바닥에서 뒹굴며 성교를 나누고 싶은 욕정에 사로 잡혔다는 표현은.. 적합한 묘사는 아닐 것이네.”(‘국가3권 중에서)

 

플루타르코스는 책 읽기에도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저자는 이제 플루타르코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책보다 더 매력적인 것들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232 페이지)

 

안재원 교수는 짧은 인생을 실속 있게 살도록 돕는 것이 고전이라는 말을 한다.(243 페이지) 안재원 교수는 고전은 삶에 중요한 질문들을 제공한다고 덧붙인다. 안재원 교수는 한국 사회가 성숙 사회로 가려면 교육 제도가 새롭게 모색되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그것이 당장 이뤄지기 어렵다면 실현 가능한 방편으로 고전 읽기를 제안한다.(249 페이지)

 

여기서 말하는 고전이란 인문학은 물론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등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생각할 거리가 많고 기억해야 할 점들도 많은 책이 고전의 힘, 그 역사를 읽다이다. 철학보다 철학사, 과학보다 과학사(科學史)이듯 고전(古典)보다 고전사(古典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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