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이름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박은영 교수의 '풍경으로 본 동아시아 정원의 미'를 펼쳐 들었다.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선비가 관직에서 물러나 칩거하면 은둔이고 세속을 멀리해 별서(別墅)를 짓고 살면 복거(卜居)라 한다."(203 페이지)
이 글은 "그들(유가; 儒家)은 항상 출처(出處)를 반복한다. 출(出)이란 상황이 좋아서 공적 생활로 나아가 활동하는 경우이고 처(處)란 상황이 나빠 자연으로 돌아와 은둔하는 생활이다."('詩의 아포리아를 넘어서' 262 페이지)란 글을 연상하게 하지만 내 관심은 복(卜)의 의미에 더 쏠린다.
복거는 살만한 곳을 가려서 정(定)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점 복자일까? 점을 쳐서 살 곳을 정한다는 것일까? 점거(占據), 점령(占領) 등의 점은 점(fortunetelling)과 관계가 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프랑스와즈 돌토는 '정신분석학의 위협 앞에 선 기독교 신앙'이란 책에서 언제나 똑같은 반죽을 가지고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드는 것에 비유되는 것 즉 똑같은 것만 생각하고 잘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믿지 못하는 태도를 신앙의 부족으로 정의했다.(다산글방 출간 책 39 페이지)
돌토가 강조하는 것은 불확실한 것을 믿는 것이다. 점 역시 불확실한 것을 수용하는 믿음과 관계 있다. 이것이 내가 신앙을 폄하(貶下; 깎아내림)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며 드러내려는 점의 진면모(眞面貌;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