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시인의 ‘생인손’을 읽는다. 시인은 기본적으로 아픔에 민감한 사람들이지만 김승희 시인은 유독 아픔에 민감하다.
‘시계풀의 편지 4’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여, 나는 그대의 하얀 손발에 박힌/ 못을 빼주고 싶다/ 그러나// 못박힌 사람은 못박힌 사람에게로/ 갈 수가 없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시인의 의도가 가닿는 곳은 아픔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는 지점임을 알 수 있다.
“찬바람 속에서 고독에 닿아 있는 쓸쓸한 힘을 나는 아직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너를 만나고 싶다’ 127 페이지)는 분이기에... ‘생인손’에서도 아픔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는 구조가 감지된다.
시인은 ”손가락 하나를 앓으면서부터/ 다른 것들은 다 배경으로 물러선다./ 시퍼렇게 파도를 몰고 달려오는/ 한 고통의 기세등등, 의기양양 아래/ 세상에는 당신밖에 보이지 않고/ 다른 생의 가치들은, 뼈들이 녹는 비누의 시간“이란 말을 한다.
배경으로 물러선다는 말은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경(前景)과 배경(背景)의 관계를 염두에 둔 표현이리라. 시인은 ”생인손도 아프지만/ 하나의 고통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지배하는 것은 더 무“섭다며 ‘당신’을 자신의 생인손으로 규정한다.
”생인손도 아프지만/ 하나의 고통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지배하는 것은 더 무서워,// 그렇게 당신은 나의 생인손이다“ 마음에 동병상련의 누군가를 담아두는 일, 그것 역시 사랑이리라. 생인손의 다른 말, 동병상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