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란 글자가 문제이다. 어제 인왕산을 순례하며 왕릉의 정자각에 대해 설왕설래한 것이 시초였다. 결론을 말하자면 정자각의 정은 정(井)이 아닌 정(丁)이고 발음은 '정자'가 아닌 '정짜'라고 해야 맞다.
그런가 하면 궁정동 안가(安家) 터의 우물터로 추정되는 곳을 보며 우리는 궁정동이 궁정동(宮庭洞)이거나 궁정동(宮廷洞)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찾아 보니 궁정동(宮井洞)이었다.
주역에서 정(井: 48번째)괘는 군자의 덕성을 상징한다. 우물이 맑고 차고 깨끗하여 누구에게나 유용해야 하듯 군자의 덕성도 맑고 깨끗하여 만인에게 항상 새로운 정신과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서대원 지음 ‘주역 강의’ 511 페이지)
정(鼎: 50번째)괘는 안정을 상징한다. 서대원은 정(鼎)의 정신을 분배의 도와 균형의 정신이라 말한다.(‘주역 강의’ 523 페이지)
지난 주 ‘최초의 유토피아 조선’의 강사는 정동(貞洞)이 왜 정동이냐 물었다. 답은 태조 이성계(왕위 등극 후 이단李旦으로 개명)의 비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貞陵)이 있었던 곳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강사는 이성계가 강씨를 처음 만난 곳인 우물의 사연이 담겨 정(井)이 아닌가, 하는 확인 불명의 말을 했다. 정릉(靖陵)도 이야기거리이다. 편안할 정자를 쓰는 중종의 능은 편안함과 정반대였다. 홀로 묻히고 도굴당하고 침수까지 된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능 조성 당시에는 이런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세상을 다 아는 듯 날치는 풍수 전문가들을 보면 넌센스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풍수란 것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된 구실이자 명분이라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어떻든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우유부단과 잔인함의 이중적 면모를 보이며 이복형인 연산군이 죽인 선비들보다 더 많은 선비들을 죽인 중종의 능에 편안할 정(靖)자를 썼다는 점이다.
이는 아무래도 부당한 네이밍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정확하게 말하면 정이란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문제이다.
우물이 있어서 정(井)자를 써 온정동이니 훈정동이니 하고 우물 정자를 닮아서 정간보(井間譜)라 하고 군자를 상징하기도 하는 정(井)이라 할 수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앞의 두 사례만 있다는 점이다.
지극히 상징적인 ‘군자 = 정‘의 사례가 반영된 이름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물론 이 사례 역시 우물의 현실적 면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