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교수의 ‘한용운 - 혁명적 의지와 시적 사랑‘을 읽다가 문득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을 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필자가 고교 2년 시절인 1964년의 어느 날 국어 시간에 누가 만해의 그 시를 암송할 수 있겠느냐는 선생님의 제안을 받고 한 학생이 시를 외움으로써 일순 교실에 신선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는 부분을 접하고서이다.
나도 시를 수십 편 암송할 수 있지만 이상하게 국민적 사랑을 받는 애송시를 외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를 외우면 정서를 순조롭게 하고 명문(名文)을 어둠 속에서라도 감상할 수 있는 미덕이 있다.
물론 이것 말고도 미덕은 더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진선(眞善)한 시의 가치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필자는 그 교우의 암송을 계기로 시는 역사나 철학보다 더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인간의 숨결을 전해주는 장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필자의 이 말은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연상하게 한다.
오늘 내가 최동호 교수의 책을 뒤늦게 읽고 시를 외워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정서 순화나 시의 가치 전달 차원이 아니다. 이틀 후에 있을 강의 시간에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문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암송한 내용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도 한번 시도해보고 싶다. 기억 나지 않거나 매끄럽지 않으면 그렇게 된 배경을 말하면 될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