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은 다시 돌아온다‘란 책을 읽던 때가 기억난다.

낭만적 사랑을 전하는 책도, 실용의 지혜를 전수하는 책도 아닌 ‘첫 사랑은 다시 돌아온다‘는 정신분석에 대한 책이다.

재작년 봄 문화해설 수업 시간에 내가 강응섭의 그 책을 교재 옆에 나란히 두고 있자 강사 선생님이 내게 지어보인 온화한 웃음이 생각난다.

나를, 사랑을 책으로 배우는 사람 또는 첫 사랑은 다시 돌아온다는 주장을 접함으로써 위로를 받으려는 사람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

그 이후 나는 같은 저자의 ‘자크 라캉과 성서 해석‘을 읽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라캉에 대한 내 생각에 별다른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내가 라캉에 대한 비판과 이의제기를 접하게 된 것은 올해 홍준기 교수의 ‘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을 통해서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라캉은 가부장적이고 독선적이며, 내담자보다 분석가에게 유리한 정신분석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나는 라캉으로부터 배울 바, 취할 바를 찾아내려 한다.

그래서 백상현 교수의 ‘고독의 매뉴얼‘, ‘라캉 미술관의 유령들‘, ‘라깡의 루브르‘ 등을 다시 읽으려 하고 특히 ‘라깡의 루브르‘는 내 사유에 길잡이가 되어줄 교과서라 생각한다.

‘정신병동으로서의 박물관‘이란 부제를 가진 ‘라깡의 루브르‘는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품들을 강박증, 히스테리, 멜랑꼴리, 성도착증 등을 드러낸 작품으로 분류한 책이다.

이 책 이후 백상현 교수는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 ‘라깡의 인간학‘, ‘나는 악령의 목소리를 듣는다‘ 등의 책을 썼다.

이 책들을 읽지 못한 것은 ‘라깡의 루브르‘를 완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든 바람직한 공부와 거리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라깡의 정신분석을 통해서는 사회의 병리적 실상을 파악하고 멜라니 클라인의 정신분석을 통해서는 치유의 단서를 얻어내고자 한다.

최근 나온 강응섭의 ‘라깡과 기독교의 대화‘란 책도 정독해야할 것이다.

주목할 책은 프랑소와즈 돌토의 ‘정신분석과 기독교 신앙‘이다.

이 책에 유목민적 신앙, 치유하는 신앙 등의 챕터가 있다.

유목(遊牧)과 정주(定住)가 아닌 유목과 치유라니.. 흥미를 자극하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이분법적 시각들은 흥미를 자극하는 한편 부작용을 낳는 첨병일 수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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