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교보 앞에서 1020번이나 7022번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목적지인 청운문학도서관이나 윤동주문학관이 아닌 안평의 집터 무계정사(武溪精舍) 인근의 무계원(武溪園)까지 가고 싶은 때가 있다.

 

잘 알려졌듯 편안함을 의미하는 안평의 평()은 게으름을 경계한다(또는 경계하라)는 뜻의 비해(匪懈)라는 호()의 발생 원인이 되었다.(는 아니다, 아름다운 광채 등을 의미.)

 

최근 심경호 교수의 안평 - 몽유도원도와 영혼의 빛이 출간되었다.(2018331) 갑자기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압도적인 스펙(1224 페이지, 70,000)의 이 책에서 저자는 안평의 생애를 청백의 순수예술 세계를 꿈꾸던 35년간의 몽유로 규정했다.

 

저자에 의하면 안평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로 좌절을 달랬다. 저자는 수양(首陽)이 당대 천재 문사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사를 논했을 동생 안평을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해석해 처참하게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말한다.

 

수양의 안평 살해는 열등감이 추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죽을 때까지 한시를 제대로 못 지었던 수양이 그림도 잘 그렸고 글씨도 조맹부체를 닮아 유려하고 힘이 넘쳤으며 태종, 세종 대에 거의 유일하게 한시를 자유자재로 읊은 안평을 질투했으리란 점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안평은 반역자가 아니라 희생자였다.

 

()란 말을 음미하게 된다. 잘 알듯 에()는 그림을 의미하는 일본어이다. 에도 시대의 풍속화인 우끼요에(うきよえ)의 그 에()이다. 엔도 슈사큐의 침묵에 후미에(ふみえ) 이야기가 나온다.

 

후미에는 에도 시대에 기독교인 여부를 가려내기 위해 밟게 했던 그리스도나 마리아 상 등을 새긴 널쪽을 의미한다. 내가 이렇게 후미에를 이야기하는 것은 수양의 폭거(暴擧)는 엔도 슈사쿠가 침묵을 통해 그린바 후미에를 밟게 한 것 같은 타협 또는 선택의 여지 부여(附與)와는 거리가 먼 행위였으리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물론 안평은 그런 선택지를 부여받았어도 수용하지 않고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안평의 행보는 모반(謀叛)이 아니었고 설령 그랬다 해도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화요일 해설 때 모든 것을 정치적 의미로 해석하면 안 되지만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을 비정치적인 의미로 풀이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말을 했다. 폭거 자체가 수양의 죄이지만 그는 부수적으로는 비정치적 의미를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해석한 우()를 범한 것이다.

 

하긴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권력 찬탈(簒奪)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위험요소로 여겨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란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처음인 듯 진지하게 읽게 된다.

 

김수영 시인이 말한 음탕의 내용이 궁금하거니와 나는 왕들이 거의 예외 없이 가족 중의 누군가를 죽인 패륜의 나라(인류학자 김현경의 표현)’ 조선을 대표하는 수양의 폭거를 음탕(淫蕩)의 범주에 넣고 싶다.

 

음탕은 행동이 음란하고 방탕함을 의미하는바 방탕(放蕩)이란 주색잡기(酒色雜技)에 빠져 행실(行實)이 좋지 못한 것외에 마음이 들떠 걷잡을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하게 끓어넘친 수양(首陽)의 추한 욕망은 음란(淫亂), 음탕으로 수식하기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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