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1975)에게 부러움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그의 생에 어머니(Martha Arendt - Beerwald: 1874 1948), 철학자 연인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 1969), 시인이자 마르크시스트 철학자 남편 하인리히 블뤼허(Heinrich Blücher: 1899 1970)가 큰 몫을 차지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보적 성향의 어머니 마르타는 아침에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겠다는 딸을 위해 아침 수업을 받지 않게 해달라고 학교에 부탁하기까지 했던 분이다. 아렌트는 학생 시절 칸트나 야스퍼스 등의 책을 읽느라 학교의 오전 수업에 빠지곤 했다. 아렌트의 어머니는 그런 딸을 너그럽게 이해했다.

 

아렌트는 야스퍼스와 평생 사제관계겸 정신적 동반자 관계를 이어 나갔다. 아렌트는 혁명에 대하여의 첫 장에 존경과 우정과 그리고 사랑을 담아스승 야스퍼스 부부에게 바친다는 글을 썼다. 아렌트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이자 사유를 종교로 삼았던 하인리히 블뤼허를 만나 평생 친구 같은 부부관계를 맺었다.

 

세탁부의 가난한 아들이었던 블뤼허는 배달 일을 해 번 돈으로 책을 사고 쉬는 날을 골라 엄청나게 책을 읽은 독학자였다. 그는 아렌트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배려했다. 아렌트는 블뤼허로부터 영감을 얻어 전체주의의 기원’, ‘사회 혁명론’ ‘폭력론등의 주요 저작들을 저술했다.

 

정신분석학자 엘리자베스 영-브륄(Elisabeth Young-Bruehl: 1946 - 2011)은 아렌트를 우정의 천재로 묘사했다. 브륄에 의하면 아렌트는 스승, 위대한 정신, 가족, 동료들과의 우정에 그치고 않고 이를 세계 사랑으로 승화시킨 철학자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나는 아렌트의 사례를 보며 여성에게는 좋은 어머니, 동반자 같은 스승, 더 나아가 어두운 그림자까지 이해하려는 배려심 깊은 남편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좋은 어머니란 개념은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개념이기도 하다. 정신분석을 활용하는 시()치료를 접하며 이제서야 나는 영화에 입문하게 되었다. 아렌트 같은 사례가 담긴 영화가 있을까? 이것이 요즘 내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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