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초콜렛 선물을 받고 집에 돌아오니 루이지 피란델로의 소설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이 눈에 띈다. 최측의농간(출판사)에서 보내준 선물이다. 나는 첫 문장에 주목한다. “뭐해?” 평소와 달리 거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화자(話者)에게 그의 아내가 한 말이다.

 

첫 문장이 인상적인 안나 반티의 소설 아르테미시아생각이 나서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논 피앙게레(Non Piangere) 즉 울지 말라는 말이다.

 

이 말은 불가피하게 수전 손탁을 생각하게 한다. 손탁은 평생 징징거리거나 응석을 부리지 않았다. 병이 늙은 육신을 유린(蹂躪)할 때도 그녀는 명랑할 것, 감정에 휘둘리지 말 것, 차분할 것, 슬픔의 골짜기에 이르면 두 날개를 펼쳐라 등의 말로 스스로를 위무했다.(이화경 지음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221 페이지)

 

손탁은 타계 전에 쓴 타인의 고통에서 우리의 특권이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는 말을 했다. 너무도 성숙한 태도이다. 손탁의 자세는 어떤 것이 제 마음인지 잘 모르겠다며 도대체 부처님의 마음은 뭔가요?라 물은 한 사미승에게 네 마음도 모르면서 어찌 부처님의 마음을 알겠느냐?고 한 승찬(선불교의 3대 조사祖師)보다 낫다.(이화경이 손탁에 대해 쓴 글 제목이 타인의 아픔에 울어보지 않고 나를 알 수 있을까임을 생각하자.)

 

네 마음도 모르면서 어찌 부처님의 마음을 알겠느냐? 같은 말이 무슨 심오한 진리라도 되는 양 떠도는 것은 참 우습다. 겸허해야 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